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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니스 리를 인용

제 4 장
그 영은 삼일 하나님의 최종 완결

I. 하나님은 영이시다

요한복음 4: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온전히 그 영이심

요한복음 4:24는 “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말한다. 여기의 “하나님”은 틀림없이 하나님 전체-아버지, 아들, 성령-를 의미한다. 단지 성령만이 아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신 전체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영만이 영이며 아버지와 아들은 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아버지, 아들, 성령, 이 셋 모두가 영이므로 그들 모두는 하나이다. 아버지가 영이고 아들이 영이며 성령이 영이다. 전체 하나님이 영이다. 영으로서 신성한 셋 모두는 하나이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 141)

우리가 삼일 하나님이 그러한 영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주님이 직접 하나님은 영이라고 (요 4:24) 말한 것을 잊은 것이다. 이 말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영이라는 뜻인가? 아버지도 영이 아니고 아들도 영이 아니라는 것인가? 오직 그 영만이 영이라는 것인가? 이것은 삼일성의 전통적인 가르침이다. 요한복음 4:24에서의 하나님은 오직 그 영 하나님일 뿐 아들 하나님도 아니고 아버지 하나님도 아니란 말인가? 의심의 여지없이 그는 아버지, 아들, 그 영이신 삼일 하나님이다. 그 영이 그 영이라고 해서 아들은 그 영이 아니란 말인가? 아버지는 그 영이 아닌가? 주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삼일 하나님을 의미한 것이며 그 하나님이 영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삼일 하나님에 대해 소위 전통적인 신학적 용어밖에 모른다. 그들은 아버지 하나님이 한 분이고 아들 하나님이 한 분이며 그 영 하나님도 한 분이라고 한다. 그들은 세 분이 분리되고 구별되는 인격들이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을 그 영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오직 그 영만이 그 영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한 요한복음 4:24에 관해 물어야 한다.

(위트니스 리, 온전케 하는 훈련, 영문판, p. 375)

이것은 전적으로 그 영의 문제이다

삼일 하나님은 전적으로 그 영의 문제이다. 우선 본질에 있어서 그는 영이다. 요한복음 4:24는 “하나님은 영이시다”라고 말한다. (헬라어에는 “영”이란 단어 앞에 관사가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본질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나무탁자의 본질은 나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탁자를 나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즉 하나님의 본질이 영이다. 둘째로 그분의 경륜에서 하나님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이다(마 28:19). 하나님은 경륜을 가지고 있고 그분의 경륜 안에서 아버지는 계획하고 아들은 성취하며 그 영은 모든 것을 적용한다. 하나님의 경륜은 최종적으로 그 영 안에 있다. 셋째, 구속(救贖)의 단계에서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고전 15:45). 주님은 마지막 아담으로 오셔서 구속을 성취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주님은 그 영이고 (고후 3:17) 그 영은 바로 삼일 하나님이다. 그의 본질은 영이며 그의 경륜은 최종적으로 영 안에 있고 그의 구속 역시 그 영으로 귀결된다. 그 결과 오늘 우리가 갖고 누리고 체험하는 주님은 바로 그 영이다. 영원 안에서 계획하신 하나님은 시간 속으로 오셔서 창조하시고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구속을 성취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우리를 방문하러 내려오셨다. 이 하나님이 그 영이다. 이 영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나 많다. 이 영은 너무 풍성하다! 이 영 안에 하나님이 있고 또한 사람이 있다. 이 영 안에는 십자가의 효능 있는 죽이는 능력이 있고 부활, 부활생명, 또한 부활의 능력도 있다. 이 영 안에는 승천과 초월이 있고 이 영안에는 또한 영광과 즉위, 왕권, 왕국이 있다. 할렐루야, 이 영은 만유를 포함하고있다!

(위트니스 리, 삼일 하나님, 영문판, p. 33-34)

이 영은 우리의 생명이 되기 위해 우리 안으로 들어온 호흡과 같은(요 20:22) 생명의 영이다(롬 8:2). 이 영은 권능의 영(행 1:8)으로 우리 위에 부는 바람과 같아(행 2:2,4) 우리의 능력이 된다. 이 영은 생명 주는 영(고전 15:45; 고후 3:6), 풍성한 공급의 영(빌 1:19),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영(고후 3:17), 거룩하게 하는 영(벧전 1:2), 변화시키는 영(고후 3:18), 인도하고 중보하는 영(롬 8:14, 26)이며 이외에도 다른 많은 기능들을 하는 영이다. 이 영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요 3:5, 6) 기름 붓고 우리를 인치며(고후 1:21, 22; 엡 1:13; 4:30) 지금은 우리의 영원한 분깃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으로 우리 안에 거한다 (엡 1:14; 고후 5:5). 이 영은 또한 첫 열매로 장차 하나님이 이끄실 영광의 자유의 미리맛봄이다(롬 8:23). 우리는 모두 이 영 안으로 침례 받았고 지금 이 영을 마신다(고전 12:13).

이 만유를 포함한 전능한 영은 우리의 영 안으로 들어오셨고(딤후 4:22) 우리의 영과 합하여 한 영이 되었다(고전 6:17).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영으로 돌이켜야만 한다. 우리가 오늘 주님을 우리의 모든 것으로 체험하고 누리려면 반드시 영으로 돌이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영으로 돌이키는 것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반드시 영을 따라 행해야 한다. 이 영이 성령인지 우리의 영인지 말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 것은 이 영이 합한 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 생각, 의지를 따라 행하지 말고 이 영을 따라 행해야만 한다. 우리의 말, 행동, 매일의 삶, 활동, 일 모두가 이 영을 따라 행해져야 한다 (롬 8:4-6; 갈 5:16, 25). 만약 우리가 영을 주의하고 영을 따라 행한다면 우리는 영 안에서 살고 주 영(the Lord Spirit)은 우리 안에 거할 것이며 주 영과 함께 행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주 영은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모든 것이 되고 우리는 삼일 하나님-아버지, 아들, 영-의 모든 풍성을 누릴 것이다. 영 안으로 침례받고 영으로 가득 찬(고전 12:13; 엡4:4) 몸인 교회에서 우리는 살 것이며 영 안에서 하나님의 거처(엡 2:22)가 되어 하나님의 충만으로 가득 차 하나님이 그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할 것이다(엡 3:19, 21).

(위트니스 리, 삼일 하나님, 영문판, p. 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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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그 영은 아버지와 아들에 의해 보내심을 받아 아버지로부터 아버지와 함께 온다

요한복음 14: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실제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한복음 14: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5:
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1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실제의 영)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261 헬라어의 의미는 '~로부터 ~와함께'이다. 실제의 영은 아들이 보내고 아버지께로서 오며 또한 아버지와 함께 온다. 보혜사는 아버지로부터 올뿐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온다. 아버지는 근원이다. 그 영이 근원으로부터 올 때 근원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근원과 함께 온다. 아들이 보내고 아버지와 함께 오는 이 영은 아들에 관하여 증거한다. 그러므로 아들에 관한 그의 간증은 삼일 하나님에 대한 것이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 486)
아들이 보내심

이 구절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실제의 영을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14:26에서는 아버지가 보혜사 곧 성령을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겠다고 하셨다. 요한은 한 가지 일에 대해 두 가지 방법으로 이야기한다. 14:26에서는 아버지가 그 영을 보내시겠다고 했는데 15:26에서는 주님 자신이 그 영을 보내시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누가 그 영을 보냈는가? 아버지인가 아들인가?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 두분 모두 그 영을 보냈다고 해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다. 아버지의 보내심은 아들의 보내심이고 아들의 보내심은 아버지의 보내심이다. 둘은 하나이다. 누가 그 영을 보냈는지에 상관없이 그 영은 항상 아들의 이름으로 아버지와 함께 왔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우리는 삼일 하나님을 본다. 그 영이 올 때 그는 아버지와 함께 아들의 이름으로 온다. 신격의 세 분 모두가 여기 있다.

(위트니스 리, 요한복음 라이프 스타디, 영문판, p. 425-426)

아버지로부터 온 것뿐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오심

26절에서 주님은 아버지께로서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셨다. 32번 메세지에서 지적했듯이 이 구절에서 “~로부터”로 번역되는 헬라어 전치사는 파라(para)이다. 헬라어에서 이 전치사의 의미는 “~로부터 ~와 함께”이다. 실제의 영은 아들이 보내고 아버지께로서 오며 또한 아버지와 함께 온다. 보혜사는 아버지로부터 올뿐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온다. 아버지는 근원이다. 그 영이 근원으로부터 올 때 근원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근원과 함께 온다. 아들이 보내고 아버지와 함께 오는 이 영은 아들에 관하여 증거한다. 그러므로 아들에 관한 그의 간증은 삼일 하나님에 관한 것이다.

(위트니스 리, 요한복음 라이프 스타디, 영문판, p. 426)

“~로부터 ~와 함께”

지금 우리는 놀라운 구절인 요한복음 15:26에 와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실제의 영)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이 구절에서 “~께로서”라는 단어에 주의해야한다. 헬라어의 의미는 “~로부터 ~와 함께”이다. 진리의 영은 아들이 보내서, 아버지로“부터”뿐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온다. 보혜사는 아버지로“부터” 아버지와 “함께” 온다. 아버지는 근원이다. 그 영이 근원으로부터 올 때 근원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근원과 함께 온다. 아들이 보내고 아버지와 함께 오는 그 영은 아들에 관하여 증거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에 관한 그의 간증은 삼일 하나님의 문제이다. 들어보라! 만약 어떤 형제님이 나를 당신의 집으로 보낸다면 나는 그의 집으로부터 당신의 집으로 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로부터 그와 함께 갔다고 말 할 수 없다. 우리는 이렇게 할 수 없지만 그 영은 할 수 있다. 아버지로부터 보내진 그 영은 아버지로부터 올 때 아버지와 함께 온다. 그의 오심은 아버지를 모셔온다. 이것이 삼일성의 역사(history)이다.

(위트니스 리, 흐름지, 영문판, p. 1610)

요한복음 7:29는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라고 하고 요한복음 15:26은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라고 한다. 이 구절들과 요한복음 6:46에서 쓰인 “~께로서”라고 번역된 헬라어 전치사는 “~로부터 함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께로서 온 것뿐 아니라 또한 아버지와 함께 온다. 요한복음 15:26에서 주님은 아버지께로서 아버지와 함께 그 영을 보내겠다고 하셨다. 사람의 관념에 따른다면 아버지가 그 영을 보낼 경우 아버지는 하늘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영은 아들이 보내서 아버지로부터만 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왔다. 보혜사는 아버지로부터 아버지와 함께 온다. 아버지는 근원이시다. 그 영이 근원으로부터 올 때 근원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근원이 그와 함께 오는 것이다. 아들이 보내고 아버지와 함께 오는 이 영은 아들에 관하여 증거할 것이다. 신격의 세분은 하나 안에 셋이다. 아버지, 아들, 그 영은 세 분리된 하나님이 아니라 유일한 하나님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에 따른 삼일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이해이다. 그러나 삼일성에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상 세분의 하나님을 갖고 있다.

(위트니스 리, 마태복음 라이프 스타디, 영문판, p. 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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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그 영은 아들의 이름으로 온다

요한복음 14:
26 1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261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이기 때문에(10:30)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5:43). 그 영과 아들 역시 하나이기 때문에 (고후 3:17) 지금 그 영은 아들의 이름으로 온다. 삼일 하나님-아버지, 아들, 그 영-은 결국 그 영으로서 사람에게 도달하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 482)

보혜사 즉 성령은 아들의 이름으로 아버지가 보냈다. 그래서 성령은 아들의 이름으로 와서 그 이름의 실제가 된다. “내 이름으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름은 아들 자신이고 그 영은 아들의 인격 즉 존재이다. 우리가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그 영을 얻는다 (고전12:3).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5:43)으로 온다.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이기 때문이다(10:30). 지금 그 영은 아들의 이름으로 올 것이다. 왜냐하면 그 영과 아들 역시 하나이기 때문이다 (고후 3:17). 이것이 아버지, 아들, 그 영이신 삼일 하나님이며 삼일 하나님은 결국 그 영으로 우리에게 도달하신다.

그 영은 아들의 이름으로 온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영이 온다. 아들의 이름은 예수이고 그의 인격은 그 영이다. 아버지 하나님은 그 영을 보내고 그 영은 아들의 이름으로 온다. 결과적으로 오시는 분은 삼일 하나님이다.

그 영이 우리에게 올 때 아버지 역시 오신다. 그 영이 올 때 아버지와 함께 아들의 이름 안으로 오기 때문에 아들 역시 함께 온다. 아버지는 그 자신과 함께 그 자신으로부터 그 영을 보내고 그 영은 아들의 이름으로 온다. 그 영은 아들로서 왔다. 그는 아들로 왔고 이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아버지와 함께 왔다. 그러므로 한 분이 올 때 세 분 모두가 온다.

다시 한 번 이것을 말하겠다. 아버지는 그 영을 그 분 자신과 함께 보냈다. 그 영이 아버지와 함께 오므로 아버지는 그 영과 함께 온다. 그 영은 아들의 이름으로 아들로서 온다. 그 영이 올 때 오는 것은 아들이다. 그러므로 그 영이 올 때 세 분 모두가 온다.

(위트니스 리, 요한복음 라이프 스타디, 영문판, p. 387)

그 영은 주님의 부활 후에 오셔서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모든 일들을 상기시키셨다. 이것은 아버지로부터 아버지와 함께 오시고 아들의 이름으로 아들로서 온 영의 상기시킴이다. 이름은 아들 자신이고 그 영은 아들의 존재 즉 인격이다. 제자들이 주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들은 그 영을 받았고 그 영은 아들이 주님이 죽기 전에 말씀하셨던 것들을 상기시켜주었다.

(위트니스 리, 요한복음 라이프 스타디, 영문판, p.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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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그 영은 삼일 하나님의 최종 완결(마지막 표현)이다

요한복음 7: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2성령(그 영)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392 하나님의 영은 처음부터 존재했다(창1:1-2), 하지만 “그리스도의 영”(롬 8:9)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영”(빌 1:19)으로서의 그 영은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아직 영화롭게 되지 못한 때문이다. 예수는 부활했을 때 영화롭게 되었다 (눅24:26). 부활 이후 하나님의 영은 성육신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되었고 그리스도는 그가 부활한 날 밤 제자들에게 그 영을 내쉬었다 (요 20:22). 그 영은 지금 “또다른 보혜사”로 죽기 전에 그리스도가 약속한 “실제의 영”이다 (요 14:16-17).그 영이 하나님의 영이었을 때는 오직 신성한 요소만 갖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에 못박히심과 부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됨으로써 그 영은 신성한 요소와 인성의 요소를 둘 다 갖게 되었고 이와 더불어 성육신, 십자가에 못박힘, 부활 이 모든 과정의 본질과 실제 또한 갖게 되었다. 지금 그는 우리가 생수로서 받을 수 있는 만유를 포함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 446)

사도행전 16: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1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71 앞의 구절에서 예수의 영과 성령이 서로 번갈아 쓰인 것은 예수의 영이 곧 성령임을 나타낸다. 성령은 신약에서 하나님의 영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이다. 예수의 영은 하나님의 영에 대한 특별한 표현으로 그의 인성 안에서 인생과 십자가에서 죽음을 통과한 예수로 성육신 하신 구주의 영을 나타낸다. 이것은 예수의 영 안에 오직 하나님의 신성한 요소만이 아니라 예수의 인성의 요소와 그의 인생과 죽음의 고난의 요소 또한 있다는 것이다. 사도들의 사역 즉 사람들 가운데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고난의 사역을 위해서는 이러한 만유를 포함한 영이 필요했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 606)

로마서8: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빌립보서 1:
19 이것이 너희 간구와 3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2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192 도우심(bountiful supply),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합창단장에 의해 합창단의 모든 필요가 공급됨을 의미한다. 만유를 포함한 영의 넘치는 공급은 바울이 그분을 위하여 그의 고통 중에서도 그리스도를 살고 확대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193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요한복음 7:39에서 언급된 “그 영”이다. 이는 주님의 성육신 이전에 존재했던 단순한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주님의 부활 이후의 하나님의 영, 즉 부활 이후의 성령으로 그의 신성은 주님의 성육신(인성), 십자가 아래서 산 인생, 십자가에 못박히심, 부활 등과 복합된 신성이다. 출애굽기 30:23-25에서의 관유는 감람유와 네 종류의 향료들로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복합된 하나님의 영 즉 현재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예표이다. 여기서는 사도행전 16:7의 예수의 영도 아니고 로마서8:9의 그리스도의 영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쓰고 있다. 예수의 영은 오직 주님의 인성과 인생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고 그리스도의 영은 주님의 부활을 위한 것이다. 2:5-8에서 묘사된 것처럼 주님의 인성을 체험하기 위해 우리는 예수의 영이 필요하다. 3:10에서 언급된 주님의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영이 필요하다. 고난 속에서 사도 바울은 주님이 인성 안에서 겪으신 고난과 주님의 부활 모두를 체험했다. 그러므로 그에게 그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 삼일 하나님의 복합되고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는 영이었다. 그런 영은 무한한 공급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인생과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는 사도 바울과 같은 이에게는 심지어 무한한 공급이 되어주셨다. 결국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합된 영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 되고 이 일곱 영은 보좌 앞에 일곱 등으로서 교회와 함께 하나님의 경륜을 이 땅 위에서 수행하며 어린 양의 일곱 눈으로서 그의 모든 어떠하심을 교회 안으로 주입하신다 (계 1:4; 4:5; 5:6)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 962)
삼일 하나님의 최종 완결

복합적이고 만유를 포함한 영이신 그 영은 삼일 하나님의 최종 완결이다. 우리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이신 삼일 하나님이다. 모든 합당한 성경학자들은 삼일성의 세 인격이 구별될 수 있어도 분리되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우리는 삼일성의 세 인격을 분리할 수 있다고 할 수 없다. 분리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단이 될 것이다. 아들은 땅에 오셨을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떠나서 오시지 않았다. 반대로 아들이 왔을 때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오셨다. 요한복음에서 주 예수님은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아버지와 함께 왔다고 말씀하셨다 (요 6:46 헬라어 참조).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왔을 때 아버지와 함께 왔다. 그렇기 때문에 주 예수님은 그분이 결코 홀로 있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항상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요 8:29). 더욱이 요한복음에서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그 영을 보낼 때 아버지와 함께 보내리라고 말한다(요 15:26, 헬라어 참조).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분리될 수 없으며 그 영을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분리할 수도 없다.

(위트니스 리, 갈라디아서 라이프 스타디, 영문판, p. 337)

아버지를 그들에게 보여달라고 요구한 빌립에게 말씀하신 주님의 대답이 이것을 지적한다. 빌립은 주님에게 이렇게 구했다. “주여 아버지를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 14:8). 예수님은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9절)고 대답하셨다. 16절과 17절에서 주 예수님은 계속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실제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하셨다. 그 다음 구절에서 주님께서 대명사를 바꾸셨음을 유의하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않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이것은 보혜사 즉 실제의 영이 올 때 주 예수께서 함께 오심을 가리킨다. 더구나 23절에서 주님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아버지와 같이 오셔서 거처를 함께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구절들에서 우리는 신격의 셋은 구별되지만 항상 함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분리될 수 없다.

성경에 따르면 아버지는 아들 안에서 체현되고 아들은 그 영으로 실제화 된다. 궁극적으로 신격의 셋은 그 영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우리의 체험에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영을 받게 되는 이유이다. 우리는 회개하고 주를 믿고 그분께 기도할 때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기를 구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주 예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기를 기도했다. 비록 우리는 주님이 들어오시기를 구했지만 실제로 우리 안에 들어오신 분은 그 영이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은 순간에도 그랬고 주님과의 매일 매일의 체험에서도 그러하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아버지께 기도하거나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결국 우리가 우리 안에서 체험하는 분은 그 영이다. 우리의 체험에서 우리는 복합적인 만유를 포함한 영인 그 영이 삼일 하나님의 최종 완결임을 안다.

(위트니스 리, 갈라디아서 라이프 스타디, 영문판, p. 338)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

오늘 우리의 하나님은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이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과정을 거치셨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것이 없다. 이 과정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되셨을 때 시작되었고 그의 인생과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계속되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은 영원하시므로 결코 변하지 않으신다고 주장하면서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반대한다. 물론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도 성경에 따라 틀림없이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하나님이 성육신과 인생과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을 통과하셨음을 성경에 따라 믿고 가르친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셨으나 과정을 통과하셨다. 하나님의 본성이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과정을 통과하셨다. 요한복음 1장 1절과 14절에 따르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되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과정을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고린도 전서 15장 45절에서는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이 되었다고 한다(원문참조). 이 구절 또한 하나님이 과정을 거치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은 “과정”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삼일성이라는 단어는 어떤가? 성경에서는 삼일성이라는 단어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삼이일(三而一)이라는 사실을 계시한다. 같은 논리로 성경에 “과정을 거치신”이라는 용어는 없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과정을 통과하셨다는 사실을 계시한다. 하나님 자신이 성육신에 의해 사람이 되셨고 땅에서 33년 반 동안 사셨다. 그런 후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음부에 내려갔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나오셔서 부활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뿐 아니라 그분은 살과 뼈가 있는 영광을 받으신 몸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지금도 주님은 그러한 몸으로 보좌에 계신다. 그리스도가 성육신 되기 전에 하늘 보좌에 계신 주는 살과 뼈가 있는 몸을 가지고 계셨는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분은 영원히 그 몸을 가지고 보좌에 계실 것이다. 이 사실이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이 과정을 통과하셨음을 나타내지 않는가? 할렐루야! 지금 우리 하나님은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이시다!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는 영은 이러한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의 최종 표현이다.

(위트니스 리, 갈라디아서 라이프 스타디, 영문판, p. 339-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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