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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 하나님에 대한 전통적인 이단들

제 1 장
삼일하나님은 비밀이다

I.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다

신명기 4:
39 그런즉 너는 오늘날 상천 하지(上天下地)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이사야 45:
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이사야 46:
9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디모데 전서 2: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51 아버지, 아들, 그 영이신 하나님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세 분의 하나님들이 아니라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 1041)

디모데 전서 1:
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성경은 하나님이 유일하게 한 분이심을 많은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말해주고 있다. 신약과 구약 모두에서 이 사실을 선포하는 구절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중 몇몇 구절을 보면 다음과 같다.

고린도전서 8:4: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을 아노라”
이사야 45: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6절, 21절, 22절과 46:9, 44:6, 8절에서도 같은 말을 찾을 수 있다.

이 구절들에서 하나님은 반복적으로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외에 다른 신이 없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단수형, 즉 하나라는 것을 말해준다. 하나님의 이러한 반복적인 선포는 하나님이 유일하게 한 분이시라는 것을 강하게 증명한다.

시편 86:10은 “주만 하나님이시니이다 (Thou art God alone.)”라고 적고있다. 여기서 시편 기자는 “당신들(Ye)”만이 하나님들이시니이다”가 아니라 “주만(thou)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한다. 2인칭 복수형인 ‘ye'가 아니라 2인칭 단수형인 ’thou'가 쓰였다는 사실 또한 하나님이 오직 한 분이시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은 성경의 명확하고 분명한 계시이다. 그러나 기독교계에는 성경이 분명히 계시하고 있는 이 정통적인 가르침이나 해석 외에, 하나님이 세 분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이 각각 하나의 하나님이고 이 셋이 합하여져서 하나의 단체적 하나님이 된다고 말한다. 즉 개별적으로 세 하나님이 있고 단체적으로 한 하나님이 있다는 것이다.

두 하나님이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은 각각 하나의 하나님이지만 성령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각각 인격 (Person)이 있지만 성령은 인격이 없고 마치 전기와 같이 수단이나 능력일 뿐이라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세 하나님이나 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러한 주장들은 성경의 근본적인 계시와 상반된다. 이러한 주장들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오로지 성경의 계시에 근거해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위트니스 리, 삼일 하나님, 영문판, p. 5-6)

하나님은 유일하게 한 분이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이 유일하게 한 분이라는 계시를 염두해야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창1:1) 맨 처음 하나님(엘로힘)이 언급되었을 때 복수형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님들”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해석이다. 하나님들이라니! 시편 86:10은 “주만(thou)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말한다. 이것은 “당신들만이(ye) 하나님들이십니다”가 아니다. 대명사 'thou'는 2인칭 단수형이지 2인칭 복수형이 아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어는 엘로힘인데(Elohim), 이것은 복수형의 단어이다. 뉴베리 성경(Newberry Bible)의 표를 참고하면, “하나님”이 세 배의 수를 나타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시편86:10은 “당신이 하나님들 입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주만(당신)이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말한다. “-만”(alone)이란 단어가 우리의 생각을 제한해야 할 것이다. “주만(당신)이 하나님(하나님들이 아니라)이십니다.”

아마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질문할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이 오직 한 분이시라고 말한다면 창세기 1:26에서 왜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우리’ 라고 말하며 ‘우리’의 형상이라고 말했습니까? 하나님이 한 분입니까? 아니면 한 분 보다 많습니까? 만약 한 분이라면, 왜 그 분은 그 자신을 ‘우리’나 ‘우리의’라고 부르셨습니까?” 내 대답은 그 분이 삼일 하나님이시고 삼일성은 비밀이라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삼일성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고 타당하게 정의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닐 것이다. 수학이나 화학의 영역에서는 인간의 사고를 통해 사물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그것은 과학이지 비밀이 아니다. 만약 당신의 명민한 사고를 통해 삼일 하나님을 이해한다면 그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삼일하나님을 정확하게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삼일성은 비밀로 남아 있다. 나에게 왜냐고 묻지 말라. 나도 왜인지는 모른다. 나는 오직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다. 논쟁하지 말고 다만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취하라.

구약과 신약 모두는 명확하고 분명하게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고 말한다. 이사야 45:5는 “나는 여호와라.... 나 밖에 신이 없는지라”라고 말한다. 비록 여기서 하나님이란 단어가 세 배의 숫자이지만 이 구절은 “우리 외에 다른 신이 없다”라고 말하지 않고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라고 말한다. 에베소서 4:6과 디모데전서 2:5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명확한 결론을 볼 수 있다. 아버지, 아들, 그 영이 세분 하나님들이라는 생각의 올무에 걸리지 말라. 고린도전서 8:4은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라고 말한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이것이 기본적이고 최종적인 원칙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을 믿는가? 이것은 단지 우리의 해석인가? 우리 모두는 “나는 하나님이 유일한 한 분이라는 것을 믿는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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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우리 하나님은 삼일이시다-아버지, 아들, 그 영

마태복음 3:
16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171 성령의 강림은 그리스도가 기름 부음을 받았음을 의미하며,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가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이라는 간증이다. 여기서 신성한 삼일성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아들이 물에서 올라왔고, 그 영이 아들 위에 임했고,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것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이 동시에 존재함을 증명하며 이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 20)

마태복음 28: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고린도후서 13: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버지, 아들, 그 영은 한 하나님이시다.

아버지, 아들, 그 영은 한 하나님이시다. 베드로전서 1:2은 아버지가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히브리서 1:8은 아들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사도행전 5:3-4은 그 영이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만약 성경을 피상적으로 읽는다면 아버지, 아들, 그 영을 분리된 세 인격들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진리 깊숙이 들어가서 요한복음 만이라도 주의 깊게 읽어본다면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셨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셨으며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일을 하셨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말씀을 말해냈고 아버지의 영광을 구했다. 이점을 말해주고 있는 성경 구절들의 깊이를 접한다면 여러분은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분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영도 아들과 분리할 수 없다. 칭호를 보면 아들과 영은 분리된 두 인격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점을 다루는 성경 구절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성령은 아들의 이름으로 오고 아들에 대하여 증거하며 아들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아들은 당신 자신의 모든 어떠함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그 영에게 주셨다. 이 점은 그 영과 아들이 하나라는 것을 가리킨다. 그 영과 아들이 하나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 영이 아들의 이름으로 올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 영이 아들을 계시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 영이 아들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아들이 그 영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겠는가? 결국 영과 아들이 하나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이며 그 영과 아들 또한 하나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이며 그 영과 아들 또한 하나라는 이러한 깨달음은 요한복음의 분명한 계시에 따른 것이다.

이 모든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매주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아버지, 아들, 그 영이 한 하나님이며 그들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와 함께 오고, 그 영은 아버지에 의해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심 받아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오셨다. 또한 아들이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가 아들 안에 계시듯이 셋 모두는 상호 내재한다 (요14:10-11). 그들은 서로 연합되어 있다. 어떻게 그들이 분리될 수 있는가? 그 셋은 하나이다. 성령은 아들의 변형이며 아들은 아버지의 체현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사실상 그들이 하나라는 것을 의미한다. 아들이 아버지와 하나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분이 아버지의 체현이 될 수 있겠는가? 그 영이 아들과 하나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 영이 아들의 변형이 될 수 있겠는가?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 139-140)

온 우주의 중심인 하나님은 홀로 계신 하나님이 아니다. 그분은 삼일이시다. 구약과 신약은 모두 삼일 하나님을 말할 때 복수 대명사를 사용한다.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우리(us)와 우리의(our)라는 복수 대명사가 사용되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서는 주 예수께서,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누구인가? 아버지와 아들이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삼일이시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중심이며 그분은 삼일, 즉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그 영 하나님이시다.

일부 기독교 학자들은 삼일성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에서 아버지를 아들과 분리시키고, 아버지와 아들 모두를 그 영과 분리시킨다. 그들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이 구별될 뿐 아니라 분리될 수 있는 세 인격이라고 가르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삼일성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아버지는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고 아들은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므로 아버지와 아들은 둘 다 하늘에 계시며 그 영은 땅에 내려오셨다. 이것은 그들의 관념에 따르면 신격의 삼분의 일은 땅에 계시고 신격의 삼분의 이는 하늘에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여러분도 여전히 이런 식의 관념을 가지고 있을까 두렵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은 누룩이 더해진 진리이다. 아버지, 아들, 그 영 - 삼일 하나님 - 이 성경의 진리인데, 이 진리에 누룩이 더해졌다. 누룩은 빵을 먹기 쉽도록 부드럽게 하기 위해 밀가루에 첨가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쉽게 하기 위해 누룩이 더해졌다. 신격의 삼일성이 분리된 세 인격들로 나누어질 수 있다는 관념을 붙잡지 말라. 이것은 누룩이다. 하나님이 삼일이시라 할지라도 그분은 한 분이시다. 아버지는 아들과 분리되지 않으며 그 영과도 분리되지 않는다. 그 셋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셋은 항상 동시에 존재하며 상호 내재한다. 한 분이 여기에 계시면 셋 모두가 여기에 계신 것이다. 한 분이 하늘에 계실 때 모두가 하늘에 계신다. 셋은 항상 하나이다. 분리됨이 없다. 이것이 삼일 하나님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기 위해 성경에 계시된 비밀이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 139)

온 우주의 중심인 하나님은 홀로 계신 하나님이 아니다. 그분은 삼일이시다. 구약과 신약은 모두 삼일 하나님을 말할 때 복수 대명사를 사용한다.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우리(us)와 우리의(our)라는 복수 대명사가 사용되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서는 주 예수께서,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누구인가? 아버지와 아들이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삼일이시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중심이며 그분은 삼일, 즉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그 영 하나님이시다.

일부 기독교 학자들은 삼일성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에서 아버지를 아들과 분리시키고, 아버지와 아들 모두를 그 영과 분리시킨다. 그들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이 구별될 뿐 아니라 분리될 수 있는 세 인격이라고 가르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삼일성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아버지는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고 아들은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므로 아버지와 아들은 둘 다 하늘에 계시며 그 영은 땅에 내려오셨다. 이것은 그들의 관념에 따르면 신격의 삼분의 일은 땅에 계시고 신격의 삼분의 이는 하늘에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여러분도 여전히 이런 식의 관념을 가지고 있을까 두렵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은 누룩이 더해진 진리이다. 아버지, 아들, 그 영 - 삼일 하나님 - 이 성경의 진리인데, 이 진리에 누룩이 더해졌다. 누룩은 빵을 먹기 쉽도록 부드럽게 하기 위해 밀가루에 첨가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쉽게 하기 위해 누룩이 더해졌다. 신격의 삼일성이 분리된 세 인격들로 나누어질 수 있다는 관념을 붙잡지 말라. 이것은 누룩이다. 하나님이 삼일이시라 할지라도 그분은 한 분이시다. 아버지는 아들과 분리되지 않으며 그 영과도 분리되지 않는다. 그 셋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셋은 항상 동시에 존재하며 상호 내재한다. 한 분이 여기에 계시면 셋 모두가 여기에 계신 것이다. 한 분이 하늘에 계실 때 모두가 하늘에 계신다. 셋은 항상 하나이다. 분리됨이 없다. 이것이 삼일 하나님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기 위해 성경에 계시된 비밀이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 126-127)

성경이 하나님을 유일한 하나님, 창조자 하나님으로만 제시하고 삼일 하나님으로는 계시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아버지, 아들, 그 영이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신다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며 간단한 일도 아니다. 우리는 타락하여 죄, 세상, 사탄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이것들을 제거할 수 있겠는가? 죄를 정죄하고 세상을 심판하고 사탄을 쫓아낼 누군가가 필요하다. 신성한 분배하심 안에서 이 누군가는 바로 아들이다. 아들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해 죄를 정죄하고 세상을 심판하고 사탄을 쫓아내도록 아버지에 의해 보내심 받았다.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그분은 인성을 입을 필요가 있었다. 피와 육신이 없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죄 사함을 위한 피를 흘리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실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아들은 십자가로 가서 육신에 속한 방식으로 죽을 수 있기 위해 혈육을 입으셔야만 했다 (히 2:14). 그분은 우리의 죄들을 씻기 위하여 사람의 피를 흘리실 수 있도록 인성을 입으셨다. 그분은 세상을 심판하셨고 사탄을 쫓아내셨다 (요 12:31).

더욱이 하나님이 단지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이 어떻게 우리 속에 들어오실 수 있겠는가?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기 위해 하나님은 생명 주는 영이 되어야만 한다. 그 영은 우리가 들이쉴 수 있는 거룩한 호흡이다 (요 20:20).

이러한 예들은 삼일성이 단지 가르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분배하심을 위한 것이기도 함을 깨닫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교리적으로 우리는 삼일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체험적으로 우리는 아버지, 아들, 그 영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증거 할 수 있다. 삼일성은 우리에게는 체험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께는 분배하심을 위한 것이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 12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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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비밀중의 비밀

이사야 9: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마태복음 28: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요한복음 1: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3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3 말씀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말씀은 말씀대로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따로 분리되어 존재한 것이 아니다. 그 둘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뒤이어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라는 구절이 나온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 407)

고린도후서 3
17 주는 영이시니, 4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174 영은 주님 자신이며 자유는 주님과 더불어 존재한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 830)

하나님은 한 분인가, 세 분인가? 우리는 한 분이라고 강하게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삼일성을 머리로만 이해하여 하나님이 세 분이라고 믿게되었다. 내게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이 세 하나님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말했다.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분명히 이단입니다. 성경은 결코 세 하나님이 계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항상 한 하나님이 계신다고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신 6:4; 사 45:5; 고전 8:4). 그럼 한 하나님이 세 인격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어떠한 방법으로 그렇게 되셨을까? “인격”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없다. 그것은 사람의 해석에서 나온 것이다. 가장 훌륭한 로마서 강해를 쓴 그리피스 토마스는 “신학의 원리”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격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종종 이의가 제기된다. 이 단어를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럴 경우 삼신론에 빠지게 된다. 본질(substance)이나 인격(person)이라는 단어를 꼭 사용해야 할 경우, 그것들이 인간의 본질과 인간의 인격(personality)과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삼일성의 체험에 관한 진리는 신학적인 용어에 달려있지 않다.” 그리피스 토마스도 이 신성한 비밀을 설명하기에는 인간의 언어가 불충분하다고 말했다. 우리에게는 언어와 표현력과 단어가 부족하다. 우리에게는 이 신성한 비밀에 대한 합당한 이해가 부족하다.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적절한 단어가 없다. 삼일성은 비밀이며 우리에게는 이것을 표현할 매개나 수단이 없다. 빌립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을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 14:9)

(위트니스 리,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 영문판, p. 400-401)

나는 주 예수가 그 영이라고 말한 것 때문에 정죄를 받아 왔다. 논쟁하거나 대답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를 정죄하는 형제들에게, “주는 영이시니” (고후 3:17)라는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고 묻고싶다. “그럼 주님과 그 영이 하나라는 말입니까?”라고 내게 묻지 말라. 이것을 충분히 설명할 기술이나 방법은 없다. 비록 이것을 충분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성경에 “주는 영이시니”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은 이 구절을 성경에서 없애 버리겠는가? 또한 나는 그 형제들에게 이사야 9:6을 제시하고 싶다.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그 이름은....영존하시는 아버지라” 그는 아들인가, 아버지인가? 이것 또한 충분히 설명할 수 없지만 성경에 아들이 아버지라고 말한 구절이 있다. 고린도후서 3:17은 지금 주님이 영이시라고 말하고, 이사야 9:6도 아들이 아버지라고 말한다. 이것이 삼일성의 비밀이다. 우리에게는 아버지, 아들, 그 영이 있다. 아들은 아버지라고 불리며 아들은 그 영이시다. 그리고 이 셋은 여전히 한 하나님이다.

우리는 모두 요한복음 1:1을 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과 하나님이 구분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1:1절의 후반부는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어렵다. 태초에 하나님의 말씀이 계셨고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 말씀은 하나님이시다. 그들은 하나인가, 둘인가? 이것이 삼일 하나님의 비밀이다.

에베소서 4:6은 아버지가 우리 안에 계시다고 말하고 골로새서 1:27은 그리스도, 곧 아들이 우리 안에 계시다고 말하며 요한복음 14:17은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다고 말한다. 아버지, 아들, 성령이 모두 우리 안에 계신다. 언젠가 나는 이 구절들을 어떤 사람에게 보여주며 이 구절들에 대해 분명한가를 묻고 이 구절들이 말씀한 것을 믿느냐고 물었다. 나는 “당신 안에 아버지, 아들, 그 영이 모두 계신다는 사실을 믿습니까?”라고 물어보았다. 그는 그렇다고 답했고 나는 다시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지금 당신 안에 몇 분이 계신지 말해 주십시오”. 그는 “한 분입니다.” 라고 답했다. 나는 “당신은 조금 전에 성경에서 아버지, 아들, 그 영이 모두 당신 안에 있다고 말하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성경은 아버지, 아들, 그 영 셋이 모두 우리 안에 계신다고 말한다. 그러나 체험에 의하면 우리 안에는 우리가 그 영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 한 분만이 계신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삼일성의 비밀이다. 그분은 오직 한 하나님이지만 또한 아버지, 아들, 그 영이다.

(위트니스 리,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 영문판, p. 401-402)

삼일 하나님의 비밀

신약에서 또 하나의 비밀은 삼일 하나님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하지만 삼일이시다. 그를 어떻게 정의하겠는가? 청년 시절 나는 하나님의 삼일성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내가 노력할수록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삼일 하나님은 비밀이다.

아버지, 아들, 그 영이 한 하나님의 세 인격이란 것은 일종의 해석일 뿐이다. 이것을 너무 강조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삼신론에 빠지게 된다. 많은 기독교 학자들이 아버지, 아들, 그 영이 세 하나님들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공개적으로 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 일부는 인격을 갖고 있는 아버지가 한 하나님이고 역시 인격을 갖고 있는 아들이 또 다른 한 하나님이지만 그 영은 인격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아니라 능력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모든 관념과 해석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런 것들에 빠져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삼일 하나님의 비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단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고 또한 그것만을 믿어야한다. 마태복음 28:19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말한다. 아버지, 아들, 그 영에게는 단 하나의 이름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삼일이기 때문이다. 고린도후서 13:13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한다. 그리스도, 하나님, 그 영은 삼일 하나님 한 분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삼일인지 말할 수 없지만 성경에 따라서 그분이 삼일이심을 안다. 우리는 신학적인 용어들을 잊고 성경의 순수한 말씀에 관심을 두어야한다. 어떻게 한 분이신 하나님이 아버지, 아들, 그 영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비밀이다. 이것이 그의 이름이 “기묘자”라 불리는 이유이다.

(위트니스 리, 흐름지, 2권, 영문판, p. 1440-1441)

삼일성의 교리는 하나님의 하나인 방면과 셋인 방면을 모두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수세기에 걸쳐 계속 논쟁이 되고있다. 성경의 진리는 사람의 제한된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두 장님이 누군가의 머리를 만지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첫째 사람은 일곱 개의 구멍을 찾았다. 두 번째 사람은 뒤통수만 만졌기 때문에 구멍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서로 거짓말을 한다며 다투었다. 누가 옳은가? 둘 다 옳다. 왜냐하면 머리에는 앞과 뒤가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완전한 그림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보지 못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 생명 메세지, 영문판, p. 620)

신학자들은 삼일성의 문제를 이와 같은 방법으로 다루어왔다. 일부는 하나님의 존재의 하나인 방면으로 논했다. 다른 일부는 세 인격인 방면으로 논했다. 이러한 논쟁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하나인 방면을 극단적으로 취하는 사람들은 이단인 양태론에 빠지고 셋의 방면을 극단적으로 취하는 사람들은 삼신론자라고 불린다. 우리도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어느 한 방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위트니스 리, 생명 메세지, 영문판, p.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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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이해할 수 없어도 누릴 수는 있다

생각으로는 신격의 삼일성인 아버지, 아들, 그 영에 관해 이해할 수 없다. 주님이 육신 안에 계셨을 때 말씀하시기를 제자들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그들이 감당하지 못할 것이고 실제의 영이 올 때 그가 그들을 모든 실제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하셨다 (요 16:12,13). 이 말은 그 분이 아직 그 영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 분은 그들 안으로 들어가실 수가 없었다. 그 분은 오직 그들 밖에 계실 수밖에 없었다. 그 분은 이미 그들에게 많이 말씀하셨고 만약 더 말씀하셨다면 그들의 생각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시고 그 영이 되어 그들 안에 들어가실 때 그들 안에서 그들을 모든 실제 안으로 이끌어 삼일 하나님을 누리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단순히 우리의 생각을 사용해서는 아버지, 아들, 그 영의 비밀을 이해할 수 없다. 머리를 써서 분석할 경우 아버지가 한 분, 아들이 한 분, 그 영이 한 분이므로 결국 도합 세 분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은 생각에 입각한 논리적 판단이다. 하지만 당신의 체험을 생각해 볼 때 당신은 당신 안에 거하시는 주님이 분명히 하나라고 선포할 것이다. 생각에서 나온 이해에 따르면 세 분의 하나님이 계시겠지만 체험에 따르면 오직 한 분이 계시다. 생각의 이해를 의지하지 말고 체험을 의지하라. 만약 생각에 의한 이해를 따른다면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나 체험을 따른다면 아버지, 아들, 그 영이 한 하나님의 세 인격이라는 것이 분명해 질 것이다.

(위트니스 리, 삼일 하나님, 영문판, p. 9-10)

우리는 삼일 하나님에 대해 성경이 어떻게 말하는지를 알며 그것을 믿는다. 우리는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순수한 말씀에 따른 진리를 볼 수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삼일성은 비밀이라 삼일성의 문제에 대한 다툼과 논쟁은 끝이 없다. 누구도 삼일성을 완벽하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삼일 하나님은 우리의 제한된 사고로 이해할 수 있는 교리의 문제가 아니다. 삼일 하나님은 우리의 체험과 누림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삼일성은 그의 경륜을 위한 것으로 그 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해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모든 것이 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많은 시간을 들여 아버지는 아들 안에 있고 아들은 지금 생명 주는 영이 되어 우리 영 안에 내주하시며 우리의 누림을 위해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이 되셨음 지적하는 이유이다. 만약 체험의 문제가 없다면 이 부분에 대해 많이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 대한 공격을 목도하며 우리는 우리가 체험한 것을 사람들에게 분명히 해야만 하게 되었다. 제이 오스왈드 샌더스(J. Oswald Sanders)는 “Spiritual Maturity" (무디 출판사) 144쪽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윌리암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이렇게 말한다: 바울은 부활한 주님과 성령을 동일시한 것 같다. 우리는 바울이 신학을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는 체험을 적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체험은 성령의 역사와 부활한 주님의 역사이다. 우리가 받은 강건케 됨과 빛 비춤과 인도하심은 그 영과 부활한 주님으로부터 똑같이 온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체험하는 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삼일 하나님은 용어나 가르침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삼일 하나님은 우리의 체험과 누림을 위한 것이다.

(위트니스 리, 삼일 하나님, 영문판, p. 20-21)

하나님이 하나 안에 셋인 이유

고린도후서 13:13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은혜, 사랑, 교통의 세 가지가 언급되어 있다. 왜 은혜가 맨 먼저 언급되었을까? 그것은 고린도후서가 은혜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12장 9절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한다. 1장 12절은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에서 행함은”이라고 한다. 고린도후서는 주님의 은혜에 대해 말한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주님의 은혜를 먼저 말하고 그 다음 하나님의 사랑을, 마지막으로 성령의 교통하심을 말한다. 이것은 왜 하나님이 하나 안에 셋 인지를 보여준다. 하나 안에 셋 임을 통해 그 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고 우리 안으로 역사해 넣어 우리의 누림이 되고 우리의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 즉 아버지의 사랑은 근원이다. 그리스도의 은혜, 즉 아들의 은혜는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나온 흐름이다. 성령의 교통하심은 아들의 은혜와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우리의 누림을 위해 우리 안으로 들어온 흐름이다. 이것은 우리의 체험으로 증명될 수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교통은 우리 안으로 아들의 은혜를 전달한다. 우리 안에 있는 아들의 은혜는 단순히 아버지의 사랑의 실제적인 맛봄과 누림이다. 아버지의 사랑은 근원이고 아들의 은혜는 나타남이며 성령의 교통은 아들의 은혜를 아버지의 사랑과 함께 우리 안으로 전달하는 전달이다. 그 결과 아버지, 아들, 그 영, 이 세 인격 모두 우리의 누림이 된다. 당신 안에 성령의 교통이 있고 이 교통 안에 살면 살수록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갖게 되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갖게되면 될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더 누리게 된다. 성령의 교통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가져오며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사랑, 아들의 은혜, 성령의 교통은 서로 다른 세 가지가 아니라 하나이며 우리가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세 과정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 아들, 그 영은 세 분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한 분 하나님의 세 단계이다. 예를 들면, 얼음이 물이 되고 물은 수증기가 된다. 즉, 한 물질이 세 형태를 취한다. 수증기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들이마실 수 있다. 이처럼 아버지의 모든 것은 아들 안에 있고 성령은 아들의 모든 것을 받았으며 우리가 누릴 수 있도록 삼일 하나님을 우리 안으로 넣어 주고 계신다 (요 16:14, 15).

(위트니스 리, 삼일 하나님, 영문판, p. 29-31)

삼일성이신 하나님을 설명하고 묘사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예는 많이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이 실제를 표현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 모두가 물질적 창조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일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예를 들 경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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