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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니스 리를 인용

제 6 장
삼일 하나님과 믿는이들의 상호내재

I. 삼일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심

에베소서 4장
6절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3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63 삼일성의 사상이 심지어는 여기에도 나타나있다. “만유 위에(over all)”는 주로 아버지를 나타내고, “만유를 통일하시고(through all)”는 아들을 나타내고, “만유 가운데(in all)”는 그 영을 나타낸다. 삼일 하나님은 결국 그 영으로 우리에게 도달하심으로 우리 모두 안으로 들어오신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938)

고린도후서 13장
5절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3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53 믿는이가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신 줄 깨닫는 한, 그는 그리스도의 참된 지체로서 합당하다고 인정된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871)

갈라디아서 2: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2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202 나는 그분의 죽음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지만, 지금 그분은 부활을 통해 내 안에 사신다. 내 안에서 그분의 사심은 전적으로 그가 생명주는 영이 되심에 의해서 이다(고전 15:45下).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885)

골로새서 1: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요한복음 14:
17 저는 1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71 여기서 약속된 그 영의 내주하심은 여기서 처음 계시 되었다. 이것은 서신서에서 성취되고 온전히 발전되었다. 고린도 전서 6장19절 로마서 8장9, 11절 참조.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 481)

로마서 8: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고린도전서 3: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린도전서 6: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1성령의 전 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191 성령은 우리의 영 안에 계시고(롬8:16), 우리의 영은 우리 몸 안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성령의 성전, 거처가 된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753)
아버지, 아들, 그리고 영이 모두 우리 안에 계심

1. 아버지가 우리 안에 계심: 에베소서 4장 6절은 “하나님도 하나이신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킹 제임스 번역)라고 말한다.

2. 아들은 우리 안에 계심: 골로새서 1장 27절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또한 요한복음 14장 20절에서 주님은 “내가 너희 안에”라고 말씀하셨다.

3. 그 영 또한 우리 안에 계심: 요한복음 14장 17절은 “진리의 영이...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분명히 아버지가 우리 안에 계시고, 아들이 우리 안에 계시고, 또한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 말한다. 우리의 체험은 이 분들이 셋이 아니라 하나로 우리 안에 있음을 말해준다. 아버지는 우리 안에 거하시기 위하여 아들 안에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신 아들은 그 영이다. 우리 안에 그 영은 우리 안에 계신 아들이고, 아버지는 우리 안에 계시기 위하여 아들 안에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영을 갖고 있는 한, 아들과 아버지 역시 갖고 있다. 요한일서 2장 23절은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라고 말한다. 로마서 8장 9, 10절은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 그분 자신임을 더욱 계시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영을 갖고 있을 때, 그는 아들 또한 갖고 있고 그가 아들을 갖고 있을 때, 아버지 또한 갖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있고, 아들은 우리가 그러한 삼일 하나님을 갖고 누릴 수 있도록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는 그 영이다. 말로는 세 분이 있지만, 체험에서는 오직 한 분 뿐이다. 그것은 정말 비밀이다!

(위트니스 리, 삼일 하나님, 영문판 p.31-32)

아들과 함께 그 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

아버지의 분배의 최종 완결은 아버지가 우리 안에서 아들과 함께 그 영으로 거하시는 것이다(요14:23, 요일 3:24, 4:13). 아버지는 단지 그분 자신으로 우리 안에 거하실 수 없다. 그분은 우리 안에서 아들과 함께 그 영으로 거하신다. 한 분이 오실 때, 우리는 세분 모두를 갖는다. 이것이 아들 안에서 그 영에 의한 아버지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것을 보기 위한 이상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경륜은 그분 자신을 그 영으로서 아들과 함께 한 아버지로, 살아 있는 인격으로 계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성한 인격이 여러분에게 은사로 주어졌다. 이러한 신성한 은사는 결코 고갈될 수 없다. 그분은 여러분 안에 계시며,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 그분은 여러분의 생명, 여러분의 생명 공급, 여러분의 만유가 되기 위해 여러분 안에 거주하신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종교적인 가르침도 필요치 않다. 생명은 어떤 가르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복숭아나무에게 바나나를 산출하지 말라고 교육시킬 필요가 없다. 복숭아나무가 자랄 때 그것은 바나나들이 아닌 복숭아들을 산출할 것이다. 요한복음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치지 않는다. 이 복음서에서 우리는 먼저 그분을 믿으며, 다음에는 그분을 사랑하라는 부탁을 받는다. 주 예수님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 하셨다.(요14:23) 이것은 우리의 생명이 되기 위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11)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라이프-스터디 메시지들을 연구했든, 얼마나 많은 집회에 참석했든, 나는 여러분이 무의식적으로 여러분 안에 아직도 남아있는 천연적인 종교적 사상을 가지고 있을까 두렵다. 여러분은 여전히 자신을 향상시키고, 더 자라게 하고, 자신을 조정하고, 자신을 교정하기를 원한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의 배경으로부터 물려받은 누룩이다. 나의 부담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이 모든 누룩을 없애버리도록 하는 것이다. 주님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볼 수 있도록 속 사람을 빛 비춰 주시기를! 그분은 여러분을 교정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분은 여러분을 거듭나게 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여러분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여러분의 생명으로, 생명공급으로, 만유로 여러분 안에 살기를 원하신다.

먼저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오시며, 다음에는 아들과 함께 그 영으로서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 그분이 여러분 안에 거하실 때, 삼일 하나님-아버지, 아들, 영-이 여러분의 생명, 여러분의 생명 공급, 여러분의 모든 것이 되기 위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 여러분은 자신을 조정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은 자신을 향상시킬 필요가 없다. 여러분에게는 여러분 안에 아들과 함께 그 영으로 거하시는 아버지가 필요하다. 할렐루야! 우리는 아버지를 가지고 있으며, 아들과 영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삼일 하나님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이상을 볼 수 있기를, 이것이 아버지의 분배하심이다.

이 메시지에서 다룬 모든 요점들-근원, 보내심, 아들과 함께 오심, 아들 안에서 사시고 역사하심, 아버지께서 가지신 모든 것을 아들에게 주심, 아들을 우리에게 주심, 아들과 함께 그 영으로 우리 안에 거주하심-은 아버지 자신을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하시기 위한 것이다. 할렐루야! 우리는 우리 안에 그러한 분배하심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그 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신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11-112)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그 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심

끝으로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그 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신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서 주 예수님은 아버지와 그분이 그분을 사랑하는 자에게 와서 거처를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믿는이들 안에 거하기 위하여 함께 오시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의 구절들, 16절부터 20절까지에서 우리는 아들이 아버지께 또 다른 보혜사, 곧 실제의 영을 그들에게 주시도록 구하겠다고 하신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실제의 영이 오실 때, 그분은 믿는이들과 함께 계실 뿐 아니라 믿는이들 안에 계실 것이다. 결국 주님은 18절에서 오시는 분, 실제의 영이 사실상 그분 자신이라는 것을 가리키셨다. 마침내 20절에서 그분은 그 날, 부활의 날에 그가 아버지 안에, 그들이 그분 안에, 그분이 그들 안에 있게 됨을 그들이 알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실제의 영이 그들 안에 계실 뿐 아니라 그분도 그들 안에 계실 것이다. 이것은 그분과 그 영이 사실상 하나라는 것을 가리킨다. 그 다음 17장에서 아버지께 드린 그분의 기도에서 주 예수께서는 “내가 그들 안에”를 두 번 말씀하셨다.(23, 26절) 이것은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아들 하나님을 통해서와 아들 하나님 안에서, 그 영 하나님에 의해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신격-아버지, 아들, 영-은 지금 우리와 하나되기 위해 우리 안에 거하신다. 이제 신성한 생명 안에서와 신성한 본성 안에서 그분은 우리를 그분의 표현으로 만들어 가고 계신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삼일 하나님을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은 전혀 종교와 관련된 생활이 아니며 또는 윤리를 표현하는 생활도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삼일 하나님을 살며 그분을 표현하는 생활이다. 이것은 삼일 하나님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여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과 그리스도의 많은 형제들을 낳아 아버지로 하여금 집을 갖도록 하며, 그리스도로 하여금 몸을 갖게 하며, 영으로 삼일 하나님을 표현할 유기체를 갖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 사람의 윤리, 사람의 천연적 관념 및 철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표현을 위하여 삼일 하나님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29-130)

믿는이들 안에 아들과 아버지와 함께 거하기 위한 그 영

그 영은 믿는이들 안에 아들과 아버지와 함께 거하신다 (요14:17, 23, 롬 8:9-11). 로마서 8장 9절부터 11절까지에는 세 가지 신성한 호칭들이 번갈아 사용된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의 영이며 그리스도의 영이 하나님의 영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이들 세 가지 신성한 호칭들은 그분 자신을 우리 존재와 완전히 연합시키기 위하여 삼일성을 우리 세 부분들 안으로 분배하시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번갈아 가면서 사용된다. 삼일성은 우리의 세 부분과 연합된다. 이것은 실로 놀랍다. 이것은 삼일 하나님이 그분의 궁극적인 최종 완결인 생명 주는 영으로 거하시는 것이다.

왜 우리는 그처럼 많은 시간을 이것에 소비해야 하는가? 그것은 누룩이 섞인 진리가 여전히 우리 관념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누룩의 요소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전체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잠재의식 속에서 삼일성의 셋이 나누어지고 분리된다는 이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오늘날 그들이 안에 성령만 가지고 있을 뿐, 아버지는 가지고 있지 않으며, 아들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삼일성에 대한 거룩한 말씀의 연구에서 우리가 첫째,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시고 그 영이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심받으며, 둘째,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오시며 그 영이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오신다는 분명한 이상을 주는 요점들을 한 항목씩 선택했던 이유이다. 이들 두 가지 요점들은 삼일 하나님이 유일하게 한 분이심을 증명해 준다. 아버지, 아들, 영이 구분된다고는 할지라도, 그들은 분리할 수 없는, 나눌 수 없는, 나누어지지 않는 하나이다. 여러분이 하나를 가질 때 여러분은 셋 모두를 가진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33-134)

그러나 결코 아버지가 먼저 오시지는 않는다. 먼저 오시는 분은 항상 그 영이다. 여러분이 그 영을 가질 때, 아들이 여러분과 함께 있다. 여러분이 아들을 가질 때, 여러분은 또한 아버지를 갖는다. 요한 일서 2장 23절은,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아들을 가질 때, 여러분은 아들과 아버지를 갖는다. 아들은 그 영으로서 오시기 때문에 (고후3:17), 그분은 영이신 그리스도이다.

이것이 신약이 영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요일5:20). 영원한 생명은 삼일 하나님의 궁극적인 최종 완결인 생명 주는 영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아버지, 아들, 그 영이시다. 이러한 삼일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의 실제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생명 안에서 자라야 한다고 말할 때, 이것은 삼일 하나님의 요소와 본질로 자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삼일 하나님을 떠난 어떤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체험에서 생명이란 단지 아버지, 아들, 그 영이다. 생명은 삼일 하나님이며 이 생명은 우리 안에 있다. 어떠한 기묘함인가! 어떠한 축복인가! 삼일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으로 우리 안에 계신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이전에 그 영은 아직 계시지 않았다(요7:39).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통과하셔야만 했던 과정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분은 성육신 되셨지만 아직은 죽음을 통과하여 부활 안으로 들어가시지 않았다. 어느 날 그분은 죽음 속으로 가셨고, 사망을 통과하여 부활 안으로 들어가셨으며, 그 후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 (고전 15:45下). 요한복음 7장 39절은 그 영이 아직 계시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생명 주는 영이 되시기 위한 과정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셨기 때문이다. 즉 그분은 아직 죽음을 통과하여 부활 안으로 들어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이 죽음을 통과하여 부활 안으로 들어가신 후에 그분은 영광을 받으셨으며, 생명 주는 영을 산출하기 위한 과정이 완성되었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34)

그분이 부활하신 후에 그분은 삼일성의 호칭을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알리셨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그분이 부활하신 후 그리고 그분의 부활 안에서 그분은 제자들에게 다시 오사 모든 이방을 제자로 삼아 믿는이들을 아버지의, 아들의, 성령의 이름 안으로 침례 주라고 분부하셨다. 그분이 모든 필수적인 과정들을 통과하신 후에야 비로소 성경에 분명히 계시된 신성한 삼일성-아버지, 아들, 영-이 있었다. 그분이 부활하신 후 그리고 부활 안에서 사람은 분배하시는 삼일 하나님과 유기적인 연합을 가질 수 있도록 완전히 과정을 거치신 삼일성 안으로 침례받을 수 있었다. 이제 믿고 침례를 받은 사람들인 우리는 아버지, 아들, 영과 하나이다. 우리는 삼일 하나님 안에 참여하며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심을 누린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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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우리는 삼일 하나님 안에 있다.

마태복음 28: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3침례를 주고

193 침례란 회개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옛 생명을 끝내고 그리스도의 새 생명으로 발아됨으로서 옛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태 안으로 들어가 왕국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다. 침례자 요한의 천거하는 사역은 다만 물로 하는 예비 단계의 침례로 시작되었다. 이제 하늘에 속한 왕은 이 땅에서 그분의 사역을 성취하시고,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통과하시고, 생명 주는 영이 되신 후, 그분의 제자들에게 제자된 사람들을 삼일 하나님 안으로 침례 주라고 명하셨다. 이 침례에는 두 방면이 있다. 한 방면은 물로 하는 보이는 것이고, 또 다른 방면은 성령으로 하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행2:38, 41, 10:44-48). 보이는 방면은 보이지 않는 방면의 표현이요 간증인 반면에, 보이지 않는 방면은 보이는 방면의 실제이다. 성령의 보이지 않는 방면이 없다면, 물로 하는 보이는 방면은 헛된 것이다. 또 물로 하는 보이는 방면이 없다면, 성령으로 하는 보이지 않는 방면은 추상적이고 비실제적이다. 양면 모두 필요하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이 침례를 명하신 지 얼마 안 되어, 그분은 오순절날에 (행1:5, 2:4)그리고 고넬료의 집에서 (행11:15-17) 그들과 온 교회를 성령 안에 침례 주셨다 (고전12:13). 그 후 이것에 근거해 제자들은 새로 회심한 자들을 (행2:38) 보이는 물 속으로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죽음 안으로(롬6:3-4), 그리스도 자신 안으로(갈3:27), 삼일 하나님 안으로(28:19),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고전12:13) 침례 주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를 표징하는 물은 침례받는 사람들의 옛 역사를 종결짓는 무덤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리스도안에 포함되고, 그리스도가 바로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며, 삼일 하나님이 결국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이기 때문에, 새로운 믿는이들을 그리스도의 죽음 안으로, 그리스도 자신 안으로, 삼일 하나님 안으로,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침례 주는 것은 단 한 가지 일을 하는데, 그것은 곧 소극적인 방면에서는 그들의 옛 생명을 끝내며, 적극적인 방면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그들을 새 생명, 곧 삼일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발아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주님이 정하신 침례는 천국을 위하여 사람들이 그들의 생명에서 나와 몸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도록 침례 주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181-182)

요한복음 14장
3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⁴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10절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20절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34 주님은 아버지 안에 계신다(10-11절). 그분은 17장 21절에 계시된 것처럼 제자들도 아버지 안에 있기를 원하셨다. 그분은 죽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을 그분 자신 안으로 이끄셨다. 그분이 아버지 안에 계시고, 그들이 그분 안에 있으므로 그들은 아버지 안에 있다. 그러므로 그분이 계시는 곳에 제자들도 있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479)

요한복음 17장
21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로마서 8장
1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고린도전서 1장 30절 너희는 2하나님께로 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302 그리스도안에서 새창조인 우리 믿는이들의 어떠함과 우리가 얻은 것은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우리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우리를 아담에서 그리스도로 옮겨 그리스도 안에 두신 것은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지혜가 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731)

고린도 전서 12장
13절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1한 성령으로 침례 5 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31 그 영은 우리의 영적 침례의 영역과 요소이며, 그 영 안에서 우리 모두가 침례 받아 하나의 유기적인 존재, 곧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종족과 국적과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이 한 몸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이 몸의 생명과 성분이며, 그 영은 그리스도의 실제이다.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살아 있는 이 한 몸 안으로 침례받은 것은 바로 이 한 영 안에서이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785)
135 영 안에서 침례 받는 것은 그 영 안으로 들어가서 그분 안에서 잃어버린 바 되는 것이다. 그 영을 마시는 것은 그 영을 받아들여서 우리 존재가 그분으로 적셔지게 하는 것이다. 이 두 과정에 의해 우린 그 영과 연합된다. 그 영 안에서 침례받는 것은 연합의 시작이며, 영 단 번에 이루어졌다. 그 영을 마시는 것은 연합의 계속이요 성취이며, 영원토록 끊임없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786)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2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노라

172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생명과 본성 안에서 그분과 하나인 것을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고전 1:30, 갈3:26-28).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841)

갈라디아서 3장
27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1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71 믿는 것은 그리스도 안으로 믿는 것이다 (요3:16). 그리고 침례 받는 것은 또한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 받는 것이다. 믿음과 침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으로 침수되었고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옷입고 그리스도와 동일시 되었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893)

요한일서 5장
20절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6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7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

206 우리는 참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또한 그분 안에 있다. 우리는 그분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는 그분과 유기적인 연합 안에 있다. 우리는 그분과 유기적으로 하나이다.
207 참된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바로 그 체현이기에(골 2:9), 그분 안에 있는 것은 참된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 참된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1294)

그리스도의 사역은 신약에서 하나님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는 주요 사역이다. 그것은 분명하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은 그분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고, 두 번째 부분은 그분이 하나님께로 다시 가시는 것이다. 이것이 왕복 교통, 즉 오고 가는 교통이다. 그분은 오심으로써 하나님을 우리에게 모셔 오셨고 하나님께 다시 가심으로써 우리를 하나님 안으로 이끄셨다. 하나님은 이러한 왕래를 통해 그분 자신을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하셨다. 주 예수님의 오심은 그분의 성육신으로 시작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끝났다. 주님의 성육신에서 죽으심까지는 그분의 사역의 첫 번째 부분이다. 그분의 사역의 두 번째 부분은 그분의 부활로 시작되어 끝이 없다. 따라서 그것은 영원토록 존속할 것이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53)

처소와 길

주님이 계시는 곳은 사실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다. 요한복음 14장 4절에서 주님은, “내가 가는 곳과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도마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모른다고 대답하고,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느냐고 물었다(요14:5). 그 때 주님은 그에게 “내가 길이요”라고 말씀하셨다 (요14:6). 이것은 그 길이 한 사람, 즉 그리스도 자신임을 가리킨다. 주님은 또한 도마에게,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했다. 이것은 그 처소가 아버지임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 길은 사람이고 그 처소도 또한 사람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보지 못했다. 길은 아들이고 길이 이르는 목적지는 아버지다.

비록 아들이 길이라 할지라도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을 통과해야만 길이 될 수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은 그리스도는 길이 될 수 없었다. 대체로 신약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아버지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길이 되심을 보여 준다. 우리의 길이신 그분에 의해서 우리는, 그분이 아버지 안에 계신 것같이, 아버지 안에 있을 수 있다.

(위트니스 리, 진리 메세지 영문판 p.75)

하나님의 뜻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요한복음 14장 3절에서 언급된 장소를 하늘에 있는 저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구절을 문맥에 따라 생각해 보면, 이 장소는 하늘에 있는 저택이 아니라 아버지임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 안에서가 아니라 아담 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신약의 기본적인 관념에 의하면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이 열렸다는 사실은 히브리서 10장에서 계시된다.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성소는 사실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삼 년 반 동안 주님을 따랐지만 아직 아버지께로 이끌어지지 않았다. 그 때에는 주님 자신만이 아버지 안에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가 그들을 위한 처소를 예비할 것이고, 그가 계셨던 아버지 안에 그들도 있을 수 있도록 그 길을 여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 자신 안으로 이끌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가장 높은 정의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었을 때, 우리는 비록 그 때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 아버지 안으로 이끌어졌다. 요한복음 14장의 문맥에 따르면 이것이 하나님의 가장 높은 뜻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 자신 안으로 이끌었다.

(위트니스 리, 진리 메시지 영문판 p.77-78)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3절에서 주님은 우리를 그분 자신에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그분은 하늘에 계시는가? 아니다. 그분은 아버지 안에 계신다. 주님은 제자들도 역시 아버지 안에 있길 원하셨다 (17절, 21절). 주님은 아버지 안에 계시므로 우리도 아버지 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주님 안에 있음으로써 제자들인 우리도 아버지 안에 있다. 주님은 아버지 안에 계셨다.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를 그분 자신 안으로 이끄셨다. 그분이 아버지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 안에 있음으로써 또한 아버지 안에 있게 된다. 그분이 계시는 곳에 우리도 역시 있다. 이것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가능케 되었다. 죽음과 부활 전에 주님은 아버지 안에 계셨지만, 제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 후에 모든 제자들도 아버지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는 마치 주께서 아버지 안에 계셨고 지금도 계시는 것과 같다. 그때에 주님은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다.

“길”은 아들 자신이심

우리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주님 자신이다. 그 길은 살아 있는 인격이므로 주님이 우리를 데려가시는 곳도 역시 살아 있는 인격 곧 하나님 아버지 자신이심에 틀림없다. 주님 자신이 사람을 살아 있는 곳인 하나님 아버지 안으로 이끄시는 살아 있는 길이시다. 우리처럼 제자들도 처소와 길이 모두 인격들이 아닌 어떤 장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에게 “나는 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6절에서 주님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아니다. 그분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뜻은 우리를 하늘로 이끄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안으로 곧 아버지 안으로 이끄시는 것이다. 주님은 믿는이들을 하늘로 이끄는 길이 아니고 아버지 안으로 이끄는 길이시다.

(위트니스 리, 요한복음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365)

“아버지께로”

살아 있는 인격이신 아버지는 목적지이고, 살아 있는 인격이신 아들은 그 길이시다. 길도 목적지도 어떤 장소가 아니다. 그 길은 아들이시고, 그 목적지는 아버지이시다. 아들을 통해서 우리는 아버지 안으로 들어간다. 길과 목적지 모두 살아 있는 인격이시다. 아들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아버지 안으로 들어간다. 이제 아들은 아버지 안에 계시고 우리도 아버지 안에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위트니스 리, 요한복음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366)

그리스도안

고린도 전서 1장 30절은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 곧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나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넣으셨다. 이제 우리는 그분 안에 있다. 전에 우리는 아담 안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아담에게서 나와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왔다. 이것은 외적인 전환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내적인 전환이다. 생명 안에서 우리는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 곧 아담에게서 그리스도에게로 전환되었다. 이제 우리는 모두 선포할 수 있다. “할렐루야,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내가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어떤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이다. 그는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다. 우리가 그러한 인식 안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위트니스 리, 고린도 전서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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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이 상호내재 안에서 삶

요한복음 15장
4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일서 3장
24절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꼰獵?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242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한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 안에 거한다.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함은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조건이다(요15:4). 우리는 우리가 그 분 안에 거함으로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심을 누린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1281)

요한일서 4장
13절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6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에베소서 4장
30절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포도나무 안에 거하고 포도나무로 하여금 가지들 안에 거하게 함으로써

열매 맺음은 가지들이 포도나무 안에 거하고 포도나무로 하여금 가지들 안에 거하게 할 때 산출된다. 요한복음 15장에서의 “거함”은 중대한 문제이다. 본 장에 있는 모든 것이 거함에 달려 있다. 참된 거함은 당신이 하나의 가지라는 분명한 이상 곧 분명한 봄(seeing)에 좌우된다. 일단 당신이 하나의 가지라는 것을 본다면, 당신이 포도나무로부터 떨어져 있기란 어려울 것이다. 당신은 포도나무 안에 남아 있길 원할 것이다. 이 남아 있음이 곧 거함이다. 거하려고 애쓰지 말라. 왜냐하면 당신이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더 떨어져 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주여 내가 가지들 중 하나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소서”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다. 나는 주께서 언젠가 당신에게 보여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당신은 자신이 가지들 중 하나임을 보게 될 것이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가지들 중 하나입니다.”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당신은 그분 안에 거할 것이다.

당신이 그분 안에 거하는 한 그분도 당신 안에 거하실 것이다.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는 것에 좌우된다. 우리가 거하는 것은 그분의 거하심의 조건이지만,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의 조건이 아니다. 그분에게는 아무 것도 조건적인 것이 없지만 우리에게는 조건적인 것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실 길이 없다. 비록 그분은 변치 않으시나 우리는 많이 변한다. 우리는 오늘 그분 안에 거했다가 내일은 그분으로부터 도망갈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는 것에 달려 있다.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이야말로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조건이다. 그분의 거하심은 우리의 거함에 달려있다. 이 상호 거함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위트니스 리, 요한복음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403)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앎

4장 13절에서 요한은, “그분의 영을 우리에게 주신 이것으로써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고 말한다. “이것으로써”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을 우리에게 주시어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어 거하게 하신 그 영(약4:5, 롬 8:9,11)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함을 우리 영 안에서 증거하는 증인이다(롬 7:16). 거하는 그 영, 즉 내주하는 그 영은 우리와 하나님이 상호 거주하는, 상호 내주하는 요소요 영역이다. 그 영에 의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이고 서로의 안에 거하며 상호 내주함을 확신한다. 이것은 습관적으로 그분의 사랑을 표현하는 우리의 생활에 의해 증명된다.

13절에서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함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은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심을 체험하고 누릴 수 있도록 그분 안에 살고 그분과의 교통 안에 머무는 것이다. 이것은 그분의 의와 사랑을 실행하는 생활로 말미암아, 신성한 기름부음에 따라(2:27) 우리와 하나님과의 하나를 실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 우리 영 안에 거하며 신성한 기름부음의 기본적 요소가 되는, 만유를 포함한, 복합적인 그 영의 운행함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 요한일서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304-305)

하나님 안에 거함

4장 16절에서 요한은,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신다고 말한다.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표현될 수 있도록 하나님 자신인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습관적으로 사랑하는 생명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우리의 내적인 내용과 외적인 표현으로서의 하나님 자신인 생명을 사는 것이다. 그 목적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그분과 하나 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은 그분이 안으로 우리의 생명이 되고 밖으로 우리의 생활이 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그분은 실지로 우리와 하나 될 수 있을 것이다.

4장 16절에서 우리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유기적인 연합을 본다. 이 유기적인 연합은 “안에”라는 단어에 의해 나타난다. 요한이,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는 사랑 안에 거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흥미롭다. 오히려 그는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전자가 더 논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후자가 더 실행적이고 실제적이다. 우리가 사랑 안에 거할 때 하나님 안에 거한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거하는 그 사랑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뜻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 자신이어야 함을 나타낸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자신인 그 사랑 안에 거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신다.

(위트니스 리, 요한일서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31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지 않음

30절에서 바울은 “또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한다. 이 구절 앞에 있는 “또한”이라는 말은 25절부터 29절까지에 언급된 모든 것들에 추가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중요한 한 가지가 더 필요함을 가리킨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은 그분은 언짢게 하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 안에 영원히 거하시므로(요14:16-17),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우리가 그분을 따라 행하지 않을 때 그 분은 근심하신다(롬8:4). 우리가 일상생활의 세밀한 것들을 위한 은혜와 함께 진리의 원칙에 따른 삶을 산다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살지 않는다면, 그 영은 우리 속에서 근심하실 것이다. 성령을 근심하게 한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에 대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끔 우리가 기쁘지 않음을 느낄 때 사실상 그 기쁘지 않은 느낌은 성령의 느낌이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 속에서 기뻐하실 때 우리도 역시 기쁘다. 은혜 안에서 진리에 따른 합당한 생활은 항상 성령을 기쁘게 하며 또한 그 영의 기쁨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다.

(위트니스 리, 에베소서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4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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