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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니스 리를 인용

제 10 장
서신서들에 계시된 삼일 하나님 (2)

I.에베소서 2장- 삼일 하나님의 왕래

에베소서 2장:
1절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절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절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절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절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8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절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10절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3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절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제하시고
15절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절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절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의 본래 상태

에베소서 2장은 하나님의 택한 사람들이 타락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그분의 택한 사람들 안으로 분배하시기 전에 우리는 죄 속으로뿐 아니라 사망 속으로 타락하게 되었다(1절). 허물들과 죄들 가운데 있는 사망의 영역 안에서 우리는 먼저 이 세상의 시대를 따라, 즉 세상의 흐름, 물결을 따라 행했다(2절). 시대의 흐름, 물결이 무엇인지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세상의 시대는 단지 세상의 현대의 유행을 의미한다. 사망의 영역 안에 있는 타락한 사람들인 우리는 이 시대의 유행을 따라 행했다. 둘째, 우리는 불순종의 아들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했다(2절). 이것은 단지 귀신이나 타락한 천사가 아니라 악한 영적인 권세의 총체이다. 이것은 불신자들 안에서 역사하는 공중의 영이다. 그러한 악한 영적인 권세의 총체는 그들 위에와 그들 속에 있다. 그러므로 불신자들은 세상의 시대를 따라, 공중 안에서와 그들 속에 있는 영적인 권세를 따라 사망 안에서 행한다.

더욱이 타락한 사람들은 육신의 정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세상이나 공중의 영과 협력한다.(2:3上) 이것이 타락한 사람의 상태이다.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사람 안으로 주입하시기 전에, 사람은 타락하게 되었고, 육신이 되어 세상의 시대를 따라, 사탄과 공중의 권세와 육신의 정욕으로 타락한 인류 가운데 역사하는 악한 자를 따라 행하게 되었다.

우리는 허물들과 죄로 죽어 있었기 때문에, 이 세상 시대를 따라, 공중 권세의 주관자를 따라 행했기 때문에, 육신이 정욕대로 행하여 육체와 생각의 갈망들을 행하기 때문에, 우리는 본성에 의해 진노의 자녀들이었다(2:3下).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57-158)

아담의 후손들이 타락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국민을 형성하기 위하여 아담의 모든 후손들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부르러 오셨다.(창 12장) 하나님의 창조에서 인류는 어떤 권리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탄의 타락으로 이것들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백성 이스라엘을 불러내어 그들에게 국민으로서의 권리들을 주셨다. 국민(commonwealth)이란 어떤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불러내셨을 때, 그분은 잃어버린 권리들을 회복하셨으며,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합당한 권리들을 가진 국민으로 만드셨다. 그러한 국민을 위하여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떤 약속들-하나님이 그들을 다스리며, 하나님이 그들을 축복하며, 하나님이 그들의 누림이 되실 것-을 주셨다. 이러한 약속들은 율법의 형태로 주어졌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의 언약이 되었다. 그리하여 구약 전체가 율법의 형태로 주어진 약속들로 된 언약이 되었다. 그러한 국민에 이방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모든 약속을 받고 모든 권리들을 누릴 그분의 국민이 되도록 부르셨을 때, 그분은 그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셨다(창 17:10-14). 하나님이 불러내신 사람들이 세상의 시대를 따르고, 공중과 그들 속의 악한 영적인 권세를 따라 육신 안에서 행하고 육신의 정욕에 의해 행하는 타락한 인류의 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육체(flesh)를 제거해야만 했다. 이렇게 육체를 제거하는 것이 할례가 의미하는 바였다. 할례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분리하는 규례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할례자로 불리웠으며 이방인들은 무할례자로 불리웠다. 할례자나 할례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국민의 권리들을 누리고 모든 축복들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나라 밖에 있었고 언약에 대하여는 외인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에서 하나님이 없었고 소망도 없었다(엡2:12).

이 시점까지 그리스도는 전적으로 이스라엘 나라와 관련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국민의 하나님이셨으며 모든 축복들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었다. 여러분이 이스라엘 나라 밖에 있는 한, 여러분은 하나님의 축복 밖에, 그리스도 밖에, 하나님의 언약 밖에, 하나님의 나라 밖에, 어떤 소망도 없이, 심지어 하나님 자신 밖에 있었다. 여러분은 세상에 있었지 이스라엘 나라에 있지 않았다. 이것이 타락한 인류의 상태이며, 구원받기 전의 우리의 상태였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58-159)

신성한 삼일성의 분배하심
(1)아버지의 풍성한 긍휼과 크신 사랑

하나님은 그분의 택한 백성들을 숭고하고, 높고, 크신 사랑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의 사랑 안에는 그분의 긍휼의 풍성함이 있다. 사랑은 높은 표준을 유지할지 모르지만, 긍휼에는 어떤 표준이 없다. 긍휼은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이룰 수 있다. 사랑은 긍휼만큼 멀리 미치지 못한다. 여러분은 가련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걸맞은 사람을 사랑한다. 그러나 여러분의 사랑 안에는 사람들의 가련한 상태보다 더 멀리 미치는 긍휼이 있어서 사랑을 그들에게 가져갈 수 있다.

하나님이 그분의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살리러 오셨다(2:5). 에베소서 2장이 로마서의 첫부분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는가? 로마서 첫 부분에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도록 제해진 것은 죄와 죄들이었다. 그러나 사망은 에베소서 2장에서 다루어진다. 에베소서 2장에 따르면, 우리는 죄인들이었을 뿐 아니라 죽은 사람들이었다. 죽은 사람들은 칭의 이상을 필요로 한다. 그들은 살아나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그분의 크신 사랑으로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살리셨다. 그분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시키셨을 때, 그분은 우리를 살리셨다. 그분은 어느 때 당신을 살리시고 다른 때 나를 살리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동시에 살리셨다.

“살리셨다” 혹은 “살게 하셨다”에 해당되는 2장 5절에 사용된 술어는 헬라어로 접두사 순(sun)을 갖고 있다. 이 접두사는 함께(together), 더불어(with), 혹은 공동의(co)등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함께 살리셨다. 이것은 사도들과 우리 모두, 곧 이 시대에 구원받은 맨 마지막 사람까지를 포함한다. 우리 모두는 함께 살리심 받았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홍해를 함께 통과했던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 모두를 함께 살리셨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6절). 더욱이 그분은 우리를 높이사 하늘에 앉히셨다(6절). 이것이 에베소서 2장에 계시된 구원이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59-160)

이 구원은 단지 죄 사함이나 하늘에 가려는 소망의 구원만이 아니다. 우리는 장래의 날에 하늘에 가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미 하늘에 앉아 있다. 이것은 칭의 혹은 화목케 함의 구원만이 아니다. 이것은 살리심 받고,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심 받고, 하늘에 앉히신 바 된 구원이다. 이것이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놀라운 삼중의 구원을 갖고 있는가! 구원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셨으며,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 이것이 에베소서에 계시된 구원, 생명-분배하심에 의한 구원이다.

죽은 사람은 그 속에 생명의 분배하심에 의해서만 살려질 수 있다. 사함(forgiveness)만으로는 죽은 사람을 살아나게 할 수 없다. 씻음(washing)도 죽은 사람을 살아나게 할 수 없다. 죽은 사람은 생명의 분배하심을 필요로 한다. 생명이 죽은 사람 안으로 분배될 때에만 그가 일어설 수 있다. 그가 여전히 더러울 수 있지만, 그는 서서 행할 수 있다. 그를 살리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는 것은 생명의 분배하심이다.

은혜로 구원받는 것은 죄 사함이나 칭의나 화목케 함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높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우리에게 생명을 분배하고, 죽은 자들로부터 우리를 일으키고, 우리를 하늘로 높이사 거기에 앉게 하신 것이 구원이다.

에베소서 2장 10절이 그러한 구원이 하나님의 걸작품을 산출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다. 10절은 우리가 하나님의 만드신 바(workmanship)라고 말한다. “만드신바”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포이에마(poiema)로서 영어 단어 시(poem)로 영어화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이다. 시는 종종 작가의 예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작가의 기법, 예술성 및 구상(design)을 보여준다. 우리는 근원이신 아버지, 과정이신 아들, 흐름이신 그 영의 삼중 생명-분배하심에 의해 쓰여진 시들이다. 이러한 삼중의 생명-분배하심은 우리로 시가 되게 한다. 우리는 그분의 삼중의 생명-분배하심에 의한 윌 삼일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60-161)

(2) 아들의 성취

우리는 죄와 사망 안으로 타락되었고, 더욱이 죄와 사망의 영역 안에서 행하고 있었으나,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고,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시고, 우리를 높이사 하늘에 앉히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을 직접 하지 않으셨다. 에베소서 2장까지는 아버지가 언급되지 않고 있음을 아는가? 그 구절들은 하나님을 언급할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그리스도가 없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실 길이 없다. 그분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하늘에 앉히시는 수단이요, 요소요, 영역이다. 그리스도 밖에서 하나님은 이 세 가지 것들을 역사 해 내실 길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그것을 하셨지만 그분은 하나의 통로, 즉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것을 하셨다.

하나님의 통로로서 그리스도는 많은 것들을 하셨지만, 그분이 하신 모든 것은 피의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2:13). 피는 그리스도의 놀라운 죽음의 표시이다. 그분의 피를 통한 구속은 우리를 하나님과 그분의 모든 축복들과 가까워지게 했다(13절). 한때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있었고,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 밖에 있었고, 하나님의 언약과 관계가 없었고, 그리스도를 떠나 있었고, 모든 축복들 밖에 있었다. 우리는 죄와 사망 속에 타락함으로써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만유를 포함한 죽음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가까워질 수 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그분은 우리의 죄와 죄들을 담당하셨다.

더욱이 그분의 죽음을 통해 그리스도는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규례들 가운데 있는 계명의 율법을 폐하시고, 그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창조하심으로써 평강을 이루셨다(14-15절). 그분이 규례들 가운데 있는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그분이 십계명을 폐하셨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계명의 율법은 도덕에 속한 율법, 가령 부모를 공경하는 것들과 관련된 것들, 살인하는 것이나 간음하는 것을 금하는 것과 관련된 것들을 말하지 않고, 의식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말한다. 앞의 율법들은 결코 폐하여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우상숭배를 금하는 율법도 폐하여지지 않았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율법들은 결코 폐하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음식을 먹는 것, 거룩한 날을 지키는 것, 할례와 관계된 것들과 같은 의식적인 규례들은 폐하여졌다. 규례들 안에 있는 의식들과 계명들은 결국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분리하는 높은 벽이 되었었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61-162)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이 모든 규례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그리스도는 우리의 옛 사람,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사탄과 사망의 권세를 폐하셨을 뿐 아니라 할례, 안식일을 지킴, 먹는 것에 관한 규례들을 포함한 모든 규례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그분은 규례들 가운데 있는 계명의 율법, 즉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분리하는 중간의 담을 폐하셨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씨의 생명인 그 껍질 속에 갇혀 있듯이 그분 속에 갇혀 있던 신성한 생명을 해방하셨다.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교회를 산출하기 위하여 껍질을 깨뜨리고 그분 안에 갇혀 있는 생명을 해방하신 것이다.

그분의 만유를 포함한 기묘한 죽음으로써 그리스도는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을 한 새 사람으로 창조하셨다(2:15). 이 한 새 사람은 조직이 아니라 생명으로 충만한 유기체이다. 오늘날 교회들 안에 많은 유대인 성도들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규례들 가운데 있는 계명의 율법들을 폐하셨고, 우리 모두가 신성한 생명의 분배하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 안으로 분배되는 신성한 생명을 가졌다. 생명의 분배하심은 우리를 바꾸실 뿐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킨다. 교회는 신성한 생명 분배하심의 산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분배하심에 의해 변화되어 가고 있다. 우리 모두는 다시 교육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변화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신성한 삼일성의 신성한 생명의 신성한 분배하심에 의해 변화되어야 한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놀라운 일을 하셨다. 그분의 죽음은 만유를 포함했다. 십자가를 통하여 그분은 죄와 죄들을 없이하셨고, 사탄을 멸하셨으며, 세상을 심판하셨고, 규례들 안에 포함된 모든 의식적인 율법들을 폐하셨다. 끝으로 그분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 안으로 그분의 신성한 생명을 해방하여 그들을 신성한 생명의 분배하심에 의한 신성한 요소로 구성된 유기체인 한 새 사람으로 창조하셨다. 이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다 십자가를 통해 한 몸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케 된다.(16절)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만유를 포함한 죽음으로 이 모든 것을 성취하신 후에, 그분은 복음을 전파하러 오셨다(2:17). 어떻게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장사되신 후에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실 수 있었겠는가? 그 대답은 그분이 부활하여 우리 안에 내주할 수 있는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는 것이다(고전 15:45下).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때, 예수께서 또한 전파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분이 죽고 부활하여 생명 주는 영이 되신 후, 그분은 우리 속에 다시 오사 가장 높은 복음, 새 사람의 복음, 평강을 이루는 생명-분배하심의 복음을 전하셨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62-163)

(3) 그 영의 도달

그리스도께서 생명 주는 영으로서 그분 스스로 그러한 복음을 전파하실 때, 우리가 그러한 복음을 듣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우리가 받는 주된 것은 생명 주는 영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복음을 영접할 때, 주로 죄사함이나 칭의를 영접한다고 생각지 말라. 우리가 그러한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영접하게 되는 중요한 것은 그 영이다. 한 불신자가,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당신은 나의 구주이십니다. 나는 당신을 받아들입니다. 주여, 내 맘에 오시옵소서”라고 말한다 하자. 즉시 전파자인 그리스도께서 그 영으로 그 사람 속에 들어올 것이며, 그는 그 영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18절은 그 영에 대하여 말한다.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영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함이라”. 이제 우리는 그 영을 가지고 있으며, 그 영은 우리를 근원이신 아버지께 이끄신다.

에베소서 2장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하늘에 앉히사 그분의 시, 그분의 걸작품이 되도록 하셨다고 말한다. 이것을 행하신 하나님은 한 통로, 즉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시는 근원이신 아버지이시다. 지난 메시지에서 우리는, 아들이 오셨을 때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셨으며(요5:43), 아버지와 함께 오셨으며(요8:29, 16:32), 아들은 아버지라 불리우기까지 했다(사9:6)는 것을 지적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계획하신 근원이며, 아들은 아버지의 목적을 성취하는 수단, 과정이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시며, 일으키시며, 하늘에 앉히시는 통로요 수단이 되셨다.

에베소서 2장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그리스도를 아들로 계시한다. 죽고 부활하신 후에 아들 그리스도는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 그 영으로 오셨다. 그 영이 오셨을 때, 그분은 아버지와 함께 오셨고(요15:26 및 각주 261), 아들의 이름으로 오셨다(요14:26). 그것은 그 영이 오셨을 때 아들이 오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들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파하러 오실 때 그 영 또한 오신다. 우리가 그분의 전파하심에 있어서 아들을 영접할 때, 우리는 그 영을 영접한다. 그럴 때 그 영은 우리를 아들을 통해 다시 아버지께로 이끄신다. 이것은 노랍다!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 그 영으로 우리에게 오셨으며, 지금 그 영은 우리를 아들을 통해 아버지께 다시 이끄신다. 이 놀라운 왕복 교통을 통해 우리는 삼일 하나님에 의한 삼중의 생명 분배하심을 누린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6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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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에베소서 3장-삼일 하나님의 내주

에베소서 3장
14절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6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17절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절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절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3하나님의 모든 2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192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에 그분의 거처를 정하실 때, 그리고 강건하여져 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규모를 깨닫고 그의 지식에 넘치는 사랑을 체험으로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충만은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골1:19; 2:9). 그분의 내주하심으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우리 존재 안으로 나누어주신다. 우리는 그런 분량과 기준에까지 심지어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까지 채워질 수 있다. 이것은 우리를 교회인 하나님의 표현으로 만든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의 풍성이 그분의 표현이 되는 것을 나타낸다. 그 풍성들이 하나님 자신 안에 있을 때, 그것들은 그분의 풍성들이다. 하나님의 풍성들이 표현될 때, 그것들은 그분의 충만이 된다(요1:16)
193 아버지는(14절) 그 영을 통해(16절) 사도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성취하셔서 그리스도(아들 17절)가 우리의 마음에 그분의 거처를 정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일)하나님의 충만으로 채워진다. 이것은 삼일 하나님의 우리의 온 존재 안으로 분배하심이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934)
신성한 삼일성의 분배하심
(1) 아버지께서 그분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능력으로 강건케 하심

앞선 청지기인 바울은 신성한 삼일성에 의한 신성한 분배하심을 위해 기도했다. 먼저 그는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말했다(14절). 이것은 그가 근원에 호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아버지께서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 영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하시기를 구했다(16절). 우리의 속사람은 그 영으로 거듭나고 그 영과 연합된 우리의 영이다.

(2)그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 안에 있는 그 영을 통해서 아버지는 우리를 강건케 하신다. 그분은 우리 영에 거주하실 뿐 아니라 우리 영과 연합되시기까지 하신다. 로마서 8장 16절은, “그 영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라고 말한다. “증거 하시다(witness)"라는 단어는 매우 의미 깊다. 그 영은 우리 영과 함께 있다. 이것은 연합됨(mingling)을 가리킨다. 우리 속 사람은 놀라운 연합된 영이다. 이 것은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 하는 고린도 전서 6장 17절과 일치한다. 어떻게 우리가 주님과 한 영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그 영이신 주님 자신이 우리의 영과 연합되는 것이다. 신성한 영은 우리 사람의 영과 연합되어 한 영이 되었다. 이것은 기이하다! 아버지는 그 영으로 우리 속사람까지 강건케 하신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70-171)

(3)우리 속사람-거듭나고 연합된 영-안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체험을 고려해 보자. 많은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질식되고, 혼란되며, 낙심하기까지 한다. 우리가 환경을 볼수록, 우리 상황을 살펴볼수록 우리는 형편 없어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음을 느낀다. 우리는 커다란 어떤 것이 우리를 부흥시키려고 일어날 때까지는 집회에 가고 싶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나약해진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우리의 간교함과 속임당함과 심지어 정신적으로 속임당하는 데에 남아 있게 된다.

여러분이 금요일 저녁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낙담해 있고 실망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날은 가련한 날이었다. 아무것도 좋지 않았다. 여러분이 집에 올 때, 여러분의 아내나 자녀들도 기쁘지 않다. 당신의 방조차도 당신에게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여러분의 상황을 살펴 볼수록 더 악화되는 것 같다. 그럴 때 여러분은 바울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내가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으로 말미암아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하옵시며”. 그럴 때 여러분은 “사탄아, 나를 떠나가라! 나는 나의 속 사람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선포해야 한다. 여러분이 속 사람으로 돌이킨다면 여러분은 감동되고 강화될 것이다. 여러분이 몇 분 동안 계속해서 기도한다면, 여러분은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이러한 강건케 함은 여러분의 육신적 나약함이나 피곤함을 삼키기까지 할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이렇게 실행할 것을 격려한다. 여러분이 연약하다고 말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어떻게 느끼더라도 피곤하게 된다. 자매들이여, 여러분의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와 피곤하다고 말할 때, 여러분은 그에게 피곤하다고 말하지 말고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속 사람이 능력으로 강건케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말해 주라. 여러분이 피곤하다고 말할 때, 여러분은 옛 사람, 겉 사람, 정신 속에 있다. 여러분은 속 사람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겉 사람 안에 남아 있지 말라. 당신은 피곤할지 모르지만 그분은 피곤하지 않다. 여러분 안에 사시는 분은 여러분 보다 더욱더 강하시다. 그분은 결코 피곤하지 않으시다. 그분은 여러분은 속 사람 안으로 강건케 하실 것이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71-172)

“속 사람 안으로”라는 표현에서 “안으로(into)"라는 단어는 매우 의미가 깊다. 우리가 속 사람 안으로 강건케 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속 사람 안에서 살지 않고, 대부분 겉 사람 안에서 산다는 것을 가리킨다. 어떤 형제가 피곤하다고 아내에게 말할 때, 그는 겉 사람 안에서, 그의 생각 속에서 육신의 피곤함을 따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아내로부터 동정을 구한다. 자매들이여, 남편들을 동정하지 말라. 그가 피곤하다고 말할 때 그로 하여금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아버지께서 속 사람을 그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으로 강건케 해달라고 기도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여러분이 피곤하다고 말할 때, 여러분은 속 사람 밖에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속 사람을 가지고 있다. 왜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가? 왜 여러분이 피곤함 가운데 머무르는가? 여러분은 피곤한 데서 여러분의 속사람 안으로 강건케 되도록 아버지께 무릎을 꿇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아플 때조차도, 아버지께서 우리 질병으로부터 속 사람 안으로 강건케 해주시기를 기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결혼 생활을 하나의 예로 사용할 수 있다. 많은 때 결혼 생활이 달콤하지 않고 다소 쓴 것 같다. 우리의 결혼 생활은 우리가 속사람 안으로 강건케 될 때에만 달콤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때때로 남편이 일터로 간 후에 자매는 남편이 그녀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생각할 수 있다. 아마 지난 밤 그는 그녀에 대해 기분이 좋지 않았으며, 오늘 아침에는 그녀가 어떤 일들에서 잘못했음을 지적했다. 그럴 때 그녀는 잘못되었는지 올바른지를 생각해 보기 시작할 것이다. 그녀가 이런 일들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그녀 속에는 더욱 어두움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녀가 겉 사람 안에, 그녀의 정신 속에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속 사람 안으로 강건케 되는 것이다. 그녀는 정신 속에, 생각과 사고 속에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그런 상태에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사고로부터 속 사람 안으로 강건케 되기 위하여 우리 영으로 돌이켜 기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모든 상황에서 이렇게 실행한다면, 우리는 강한 그리스도인들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실행을 통하여 신성한 분배하심이 우리를 신성한 삼일성의 모든 풍성으로 주입하기 위한 길을 갖게 된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72-173)

(4)그분의 거처를 만드시는 아들 그리스도

우리가 속 사람 안으로 강건케 될 때, 그리스도는 우리의 마음 속에 그분의 거처를 만드실 수 있다(16-17절).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그분의 거처를 만드시는 것은 커다란 문제이다. 이것은 그분 자신을 우리 존재 안에 완전히 정착하시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네 부분-감정, 의지, 생각 및 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마음 속에 그분의 거처를 만드시는 것은 그분이 자신을 우리의 감정, 뜻, 생각 및 양심 안에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존재의 각 부분을 점유하실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마음을 많은 방이 있는 아파트에 비유할 수 있다. 하나의 방은 생각이며 다른 방들은 의지, 감정, 양심이다. 우리는 주님을 믿었고 우리 안에 그분을 소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 속에 그분으로 거처를 만드시게 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에베소 성도들의 마음 속에 그분의 거처를 만드실 길을 가지시도록 그들을 위하여 기도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는 우리 속에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지만, 우리의 생각, 감정, 의지 및 양심을 적시는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 속에 그리스도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자주 여행을 하는데, 많은 때 손님처럼 방안에 있다. 종종 주인은 나에게 편하게 지내라고 권한다. 그러나 환대를 받는 손님처럼 나는 편한 느낌을 갖지 못한다. 나는 단지 일시적으로 그곳에 머물러 있을 뿐 그곳이 나의 집이 아니기 때문에 그곳에 정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 마음 속에 그분의 거처를 정하시고, 우리 마음 각 부분을 점유하기를 갈망하신다. 그분은 우리 내적 존재의 각 부분을 점유하기를 갈망하신다. 그분은 우리 내적 존재의 각 부분을 차지하시기를 원한다. 우리의 내적 존재는 그리스도로 적셔지고, 소유되고, 점유되고, 채워져야만 한다.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속에 그분의 거처를 만드셨다면, 그분이 우리 마음의 모든 공간을 점유하셨다면, 우리는 연약하지 않을 것이다. 그 반대로 우리는 거룩하며 심지어 영적인 살아 있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때, 우리는 영적인 생활에서 강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가 매우 일반적인 방식으로 우리 속에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거실”의 한쪽 모퉁이에만 영접했을 수도 있다. 여러분은 그분이 다른 부분으로 움직이실 수 있도록 자유를 드리지 않았다. 그 결과 여러분은 연약하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지만, 여러분이 그리스도로 적셔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연약하다. 여러분에게는 전존재를 적시기 위한 생각, 감정, 의지 및 양심 안으로의 생명-분배하심이 결핍되어있다. 그러나 여러분의 내적 존재의 각 부분-여러분의 생각, 감정, 의지 및 양심-이 생명-분배하심을 통해 그리스도로 완전히 적셔졌다면, 여러분은 강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진실로 주님과 하나일 것이다. 이것이 인도적인 청지기, 하나님의 은혜의 분배자인 바울의 목표였다. 그는 그의 사역 아래 있는 모든 성도들이 생명의 신성한 분배하심으로 적셔져 그들의 속 부분 안으로 그리스도로 완전히 점유되기를 갈망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아버지께 무릎 꿇고 그들이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 영을 통해 능력으로 강건케 되어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 속에 그분의 거처를 정하시기를 기도했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73-174)

신성한 분배하심의 결과
하나님의 모든 충만에 이르도록 충만됨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그분의 거처를 만드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with)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충만에 이르도록(unto) 채워질 것이다(3:19).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그분의 거처를 만드시도록 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완전한 충만이 될 정도로 신격, 즉 삼일성으로 채워질 것이다.

여기에서의 충만은 풍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의 표현, 나타남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컵에 물을 채울 때, 물이 그 컵의 가장자리까지 차서 넘칠 때 여러분은 물의 충만을 볼 수 있다. 그러한 넘침이 물의 충만이다. 물의 충만인 그러한 넘침이 물의 표현이다. 그러나 단지 소량의 물이 그 컵 안에 들어있다면 어떤 사람도 물을 볼 수 없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그분의 거처를 만드심으로 우리를 가장자리까지 채워 심지어 그분이 우리의 내적 존재로부터 흘러 넘칠 수 있도록 그 영을 통해 강건케 되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우리 존재 내부로부터 흘러 넘치는 정도까지 채워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충만, 하나님의 표현이 된다. 그럴 때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부터 흘러 넘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1장에 언급된 것보다 더 높고, 더 깊고, 더 풍성하고, 더 심오한 것이다. 1장은 그리스도의 충만에 대하여 말하지만(23절), 3장은 보다 넓고 풍성한 하나님의 충만에 대하여 말한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74-175)

삼일 하나님의 표현에 이르기까지 충만케 됨

결국 하나님의 충만으로 귀결되는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에베소서 3장의 이런 구절들에서, 우리는 삼일 하나님을 본다. 아버지(14절)는 그 영(16절)을 통하여 사도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성취하시어, 그 아들(17절)이신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 마음 안에 그분의 거처를 정하게 하신다. 이처럼 우리는 삼일 하나님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충만 된다. 이것이 우리로 그분의 표현이 되게 하기 위해 우리 존재 안으로 삼일 하나님을 분배하시는 것이다.

에베소서 3장에 의하면, 삼일, 하나님은 교리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기 위한 분이 아니다. 그분은 믿는이들의 아버지만도 아니고 아들만도 아니고 그 영만도 아닌, “하나님”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충만 되도록 그분 자신을 믿는이들 안으로 분배하시기 위해 계신다. 바울은 아버지께서 그분의 영을 통해 우리를 강건케 하시어,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안에 그분의 거처를 정하시고, 그리하여 우리 내적 존재를 완전히 차지하시며, 그 결과 우리가 삼일 하나님의 표현에 이르기까지 충만케 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얼마나 영광스럽고, 놀라운가!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이요, 하나님의 분배이다. 또한 이것이 하나님의 신약 계시오, 우리의 사역이며, 주님의 회복이다.

(위트니스 리, 에베소서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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