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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 하나님에 대한 전통적인 이단들

위트니스 리를 인용

제 2 장
하나님은 영원히 삼일이시다.

I. 아버지, 아들, 그 영은 모두 하나님이다.

베드로전서 1: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에베소서 4:
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히브리서 1:
8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요한복음 20:
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1하나님이시니이다

281 이 복음은 사람 예수가 바로 하나님임을 의도적으로 강하게 증명한다 (1:1-2; 5:17-18; 10:30-33).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 512)

사도행전 5:
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버지는 하나님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아버지는 하나님이다. 신약은 많은 곳에서 아버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한다. 베드로 전서 1:2와 에베소서 1:17이 그 예이다.

아들은 하나님이다

아들 역시 하나님이다. 히브리서 1:8은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라고 말했다. 여기서 아들은 하나님이라 불린다. 요한복음 1:1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한다. 말씀은 확실히 그리스도 즉 아들이다. 말씀이 하나님이므로 아들 역시 하나님이다. 로마서 9:5는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라”라고 한다. 나는 이 구절을 좋아한다. 아들 그리스도는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그는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이다.

그 영은 하나님이다

사도행전 5:3-4에서 그 영이 하나님이심을 본다. 3절에서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그가 성령을 속였다고 말하고 다음 구절에서는 하나님을 속였다고 말한다. 이 구절들에 따르면 성령은 하나님과 같다.

아버지, 아들, 그 영은 하나님이다. 몇 분의 하나님이 계신가? 한 분밖에 없다. 아버지, 아들, 그 영이 모두 하나님인데 어떻게 하나님은 한 분밖에 계시지 않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나는 모른다”이다.

아버지, 아들, 그 영은 한 분 하나님

아버지, 아들, 그 영은 한 분 하나님이다. 베드로전서 1:2는 아버지가 하나님이라고 하고 히브리서 1:8은 아들이 하나님이라고 하며 사도행전 5:3-4는 그 영이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만약 여러분이 성경을 피상적으로 읽는다면 아버지, 아들, 그 영이 서로 분리된 세 인격들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분이 진리 깊숙이 들어가 요한복음 만이라도 주의 깊게 읽어 본다면 여러분은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고 아버지의 뜻을 행했으며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이름으로 일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분은 아버지의 말씀을 말했으며 아버지의 영광을 구했다. 여러분이 이 요점들을 다루는 구절들의 깊이를 만진다면 여러분은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여러분은 그들을 분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영은 아들과 분리되어있지 않다. 이 두 칭호들로 인해 그들은 분리된 두 인격들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문제를 다루는 구절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깊이 있게 살펴본다면 여러분은 그 영이 아들의 이름으로 와서 아들에 대하여 증거하고 아들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을 볼 것이다. 게다가 아들은 그분의 모든 어떠함과 그분이 가지신 모든 것을 그 영에게 주셨다. 이런 점들은 그 영과 아들이 하나임을 보여준다. 그 영과 아들이 하나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 영이 아들의 이름으로 올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가 와서 아들을 계시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가 와서 아들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아들이 그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겠는가? 결국 여러분은 그들이 하나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이며 그 영과 아들 또한 하나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이며 그 영과 아들 또한 하나라는 이러한 깨달음은 요한복음의 분명한 계시에 따른 것이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 139-140)

이 모든 점이 아버지, 아들, 그 영이 한 분 하나님이며 그들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와 함께 오며, 그 영은 아버지에 의해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심 받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오셨다. 그리고 아들이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가 아들 안에 계시듯 그들 모두는 상호내재한다 (요14:10-11). 그들은 서로 연합되어 있다. 어떻게 그들이 분리될 수 있는가? 그 셋은 하나이다. 그 영은 아들의 변형이며 아들은 아버지의 체현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체현이며 그 영은 아들의 변형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사실상 그들이 하나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들이 아버지와 하나가 아니라면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의 체현이 될 수 있겠는가? 그 영이 아들과 하나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 영이 아들의 변형이 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삼일성의 문제는 대단히 비밀스럽다. 우리는 이것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그로 인해 우리는 체현이나 변형과 같은 용어를 채택해야만 했다. 우리는 대표(representation)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그리고 아들과 그 영 사이에 어떤 대표하는 관계가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들이 아버지의 체현이며 그 영이 아들의 변형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서로에 의해 대표되지도 않는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 14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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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세분 모두 영원하다

이사야9: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히브리서 1:
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12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히브리서 7:
3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요한복음 8:
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1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81 주님은 위대하신 ‘나는 (~로) 존재한다’(the great I AM)로서 영원하며 영존하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그는 아브라함 이전에도 있었고 아브라함 보다 크다(53절)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 454)

히브리서 13: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브리서 9: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우리가 아버지, 아들, 그 영이 영원하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소문과 비난들이 있다.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이 어디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성경에 따라 우리는 아버지가 영원하고 아들이 영원하며 그 영 역시 영원함을 믿는다고 선포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선포한다.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영원하다

이사야 9:6은 “영존하시는 아버지(everlasting Father)”라는 표현을 쓴다. 히브리 구절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영원한 아버지(Father of eternity or eternal Father)”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영원하다.

아들은 영원하다

아들 역시 영원하다. 히브리서 1:12는 아들에 대하여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라고 말한다. 히브리서 7:3은 그가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가 영원함을 의미한다. 영원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영원한 하나님을 표시할 때 직선대신 원을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그 영은 영원하다

그 영 역시 영원하므로 히브리서 9:14는 “영원하신 성령”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따라 아버지, 아들, 그 영, 이 세 분 모두 영원함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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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세분 모두가 동시에 공존하며 특정 양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3:
16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1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171 성령의 강림은 그리스도가 기름 부음을 받았음을 의미하며,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가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이라는 간증이다. 여기서 신성한 삼일성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아들이 물에서 올라왔고, 그 영이 아들 위에 임했고,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것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이 동시에 존재함을 증명하며 이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 20)

요한복음 14: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아버지, 아들, 그 영은 동시에 존재한다. 요한복음 14:16-17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고 한다. 이 말씀을 주목하자. 이 두 구절에서 아들은 아버지께 그 영을 보낼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다. 여기에서 보듯이 아버지, 아들, 그 영 모두는 동시에 존재한다.

에베소서 3:14-17에서 바울은 아버지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사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에 계시게 기도하겠다고 했다. 이 구절에도 아버지, 그 영, 아들 그리스도가 모두 나타나있다. 모두는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성경은 일정 기간 동안 아버지가 존재하다가 그 다음에 아들이 오고 그 이후에는 아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성령이 그를 대신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구절은 없다. 이 구절에서 성경은 아버지가 기도를 듣고 그 영이 성도들을 강건하게 하고 아들인 그리스도가 그들의 마음에 거처를 정한다고 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세 분 모두가 동시에 공존하는 것이 명확해진다.

고린도후서 13:13은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아들 그리스도의 은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교통이 언급된다. 이 셋 모두는 동시에 존재한다.

고린도전서 12:4-6은 은사의 영, 행정의 주, 역사의 하나님을 말한다. 여기서 그 영과 주와 하나님을 본다. 다시 한번 그 영, 아들, 아버지가 동시에 공존하고 역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영은 은사를 주고 주님은 행정을 하시고 아버지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의 존재가 사라지고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하며 그 후에는 그 영이 아들을 대신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아버지, 아들, 그 영, 세 분 모두 영원히 공존함을 믿는다.

(위트니스 리, 삼일 하나님, 영문판, p. 9-11)

“위트니스 리는 그리스도가 아버지와 그 영이라고 가르칠 때, 그는 양태론을 가르치며 신격의 세 인격의 상호내재와 상호공존을 부인한다.”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나는 이 비난을 부인한다. 만약 그들이 나에게 마대복음 3:16-17절에서 아들이 서 있고 그 영이 임하고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적어도 그들이 믿는 만큼은 믿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아버지, 아들, 그 영, 이 세 분은 모두 동시에 존재한다. 나는 신격의 세 분의 상호내재와 상호공존에 추호의 의심도 없다. 마태복음 3:16, 17을 믿을 뿐 아니라 이 주제와 부합되는 모든 구절들을 믿는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 1:4, 5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한다. 이 구절에서 아버지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이고 그 영은 “일곱 영”이며 아들은 “충성된 증인,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이다. 여기서 아버지, 그 영, 아들은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승천과 오순절 이후에도 존재하고 있다. 다른 많은 구절들이 이것을 보여준다. 고린도후서 13:13은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성령의 교통하심을 본다. 더욱이 에베소서 3:14-17은 “내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거처를 정하시고)......”(헬라어). 다시 한번 아버지, 그 영, 그리스도가 모두 동시에 모두 존재함을 볼 수 있다. 내가 양태론자라는 비난은 잘못된 것이며 나 또한 양태론을 절대적으로 거부한다. 양태론은 하나님이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이 아니며 아들의 계시는 승천과 함께 끝났다고 가르친다. 양태론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의 영원함을 부인한다. 양태론은 이단이며 우리는 양태론을 거부한다.

(위트니스 리, What A Heresy, 영문판, p. 3-5)

아버지, 아들, 그 영의 상호내재와 상호공존

일부 비평가들은 “마태복음 3:16-17은 아들이 거기 서 있고 아버지가 하늘로부터 말씀하셨으며 성령은 아들 위에 임했다고 한다. 세 분 모두 동시에 행동하셨다. 당신이 말하는 것으로 보아 당신은 이것을 믿지 않는 것이 틀림없다.”라고 말한다. 이것에 대한 우리의 답변은 우리가 비평가들보다도 더 확고히 이것을 믿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순수한 말씀에 따라 성경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믿는다. 나는 아버지, 아들, 그 영이 동시에 있다는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구절들을 지적할 수 있다. 고린도후서 13:13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한다. 아들, 아버지, 그리고 그 영 세분 모두가 여기에 있다. 에베소서 3:14-17에서 바울은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사 그리스도가 그들의 마음속에 거처를 만드시기를 기도했다. 여기서도 우리는 아버지, 그 영, 그리스도를 볼 수 있다. 이것이 삼일 하나님이다.

(위트니스 리, 젊은이들의 훈련, 영문판, p. 83-84)

양태론의 오류는 무엇인가? 양태론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이 모두 영원하지 않고 모두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대신 양태론은 아들의 계시가 승천과 함께 끝났으며 승천 후에 아들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아버지, 아들, 그 영의 상호내재와 상호공존을 믿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지나친 주장이다. 양태론자들과 달리 우리는 신격의 세 분의 상호내재와 상호공존을 믿는다. 아버지, 아들, 그 영은 동시에 같은 조건 아래서 함께 존재한다. 우리는 또한 세 분 모두가 영원하다는 것을 믿는다. 이사야 9:6은 아버지가 영원함을 말하고 히브리서 1:12와 7:3은 아들이 영원함을 보여주며 히브리서 9:14는 영원한 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아버지, 아들, 그 영은 잠시 계신 분들이 아니다. 그들은 영원하다.

(위트니스 리, 젊은이들의 훈련, 영문판, p.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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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세 분 모두 영원히 상호내재하며 서로 분리된 세 분의 하나님이 아니다.

요한복음 1: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3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3 말씀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말씀은 말씀대로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따로 분리되어 존재한 것이 아니다. 그 둘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뒤이어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라는 구절이 나온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 407)

요한복음 10: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한복음 14:
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고린도전서 15:
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골로새서 2: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1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91 “충만”은 하나님의 풍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풍성의 표현을 나타낸다. 그리스도 안에는 신격의 풍성뿐 아니라 하나님의 어떠하심의 풍성의 표현 또한 거한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 992)
아버지와의 상호공존과 상호내재

아들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상호 공존할 뿐 아니라 상호 내재하신다.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영원과거에 아들과 아버지가 동시에 계셨다는 것을 듣게 되는데 그것은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요 1:1). 아들은 자신이 혼자 온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함께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요 8:16, 29). 그러므로 땅에 계셨을 때 그 분은 아버지와 함께 하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주님은 자신이 아버지 안에 있으며 아버지께서 자신 안에 계시다고 말씀하셨다 (요 14:10a, 11b, 17:21). 어떤 사람들은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 분리되며 아들은 아버지를 대표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님은 “네가 나를 보았으면 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요 14:9). 이것은 대표의 문제가 아니라 체현의 문제이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서 완전히 체현되신다 (골 2:9). 아들을 볼 때 여러분은 아버지를 본다. 왜냐하면 아들은 아버지의 체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체현되어 있으며 아들은 아버지의 체현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들을 분리할 수 없다. 아들은 아버지 안에 계시며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신다. 그 둘은 하나이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 119-120)

이것은 교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체험을 위한 것이요 그 분께는 분배하심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부르고 구원받았을 때 즉시 누군가가 우리 존재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누구인가? 아버지인가, 아들인가, 아니면 그 영인가? 말하기 어렵다. 처음에는 아들이 우리 안에 계신 것 같다. 나중에는 아버지 또한 우리 안에 계신 것 같다. 결국 그 영도 우리 안에 계신 것 같다. 우리가 그 영을 갖고 있는 한 우리는 아들과 아버지 또한 갖게된다. 하나를 가질 때 우리는 셋을 갖는다. 그 셋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삼일 하나님의 분배하심이며 이것은 우리의 체험을 위한 것이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 120)

성령에 대한 질문을 받을 경우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그 영이 신격의 세 번째 인격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신격이 아버지, 아들, 그 영 이 세 인격을 포함한다고 지적하는데 이것 또한 옳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충분하지 못하다. 아버지와 아들이 신격의 세 번째인 그 영 안에서 충만히 실현되었음을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우리가 성령을 아들이나 아버지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신격의 세 분은 상호 공존할 뿐 아니라 상호 내재한다. 즉 아버지, 아들, 그 영은 상호 공존하며 상호 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삼일이다. 즉 그분은 셋-하나이다. 상호공존은 동시에 함께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상호내재는 정의 내리고 이해하기가 좀 더 어렵다. 삼일 하나님의 경우 이 용어는 아버지, 아들, 그 영이 서로 안에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성경은 분명히 아들이 왔을 때 아버지도 함께 오셨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그 영이 왔을 때 그는 아들과 아버지와 함께 왔다. 더욱이 아들이 왔을 때 아버지는 외적이 아니라 내적이고 주관적으로 아들 안에서 아들과 함께 왔다.

(위트니스 리, 빌립보서 라이프 스타디, 영문판, p. 335-336)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아들과 그 영의 관계를 언급할 때 요한복음은 특정 헬라어 전치사를 사용하는데 이 전치사는 “~로부터 ~와”라고 번역할 수 있다 (6:46; 16:27).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왔을 뿐 아니라 심지어 아버지와 함께 왔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왔고 또한 아버지와 함께 왔다. 이것은 아들이 왔을 때 아버지도 함께 왔음을 나타낸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서 왔다. 그러므로 주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봤노라”(요 14:9)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는 또한 증거하기를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시다”(요 14:10)라고 했다. 한 면으로 아버지와 아들은 둘이다. 또 다른 한 면으로 그들은 하나이다.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왔을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왔기 때문에 주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10)라고 말씀하셨다. 더욱이 성경에 따르면 우리에게 아들이 있으면 또한 아버지도 있다 (요일 2:23).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있고 심지어 아들 안에 있기 때문에 아들을 영접할 때 우리는 아버지도 영접한다. 게다가 그 영이 올 때 그는 아들과 아버지 모두와 함께 온다. 그러므로 그 영을 갖는다는 것은 아들과 아버지를 모두 갖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에 대한 삼일 하나님의 최종적이고 완결된 도달하심이다. 성령이 여러분에게 이를 때 신격의 세 번째인 성령만이 오고 아버지와 아들은 하늘에 머문다고 생각지 말라.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식으로 이해한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다고 믿는 대신 그리스도가 자신을 대신해 성령을 보내 우리 안에서 기능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념은 모두 틀린 것이다. 성경은 그 영이 믿는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에 따르면 성령이 올 때 아들도 그와 함께 그 안에서 온다. 아버지 또한 아들과 그 영과 함께 온다. 이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올 때 삼일 하나님 전체가 온다는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아버지는 근원이고 아들은 과정이며 그 영은 흐름이다. 성령이 당신과 나에게 삼일 하나님의 완결된 흐름이라니 얼마나 놀라운가!

(위트니스 리, 빌립보서 라이프 스타디, 영문판, p. 336-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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