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 하나님 삼일 하나님
 
삼일 하나님 홈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 세 분의 관계
생명이시며 생명 주는 분이신 삼일 하나님
과정을 거치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
삼일 하나님에 대한 전통적인 이단들

위트니스 리를 인용

제 5 장
본질적이고 경륜적인 삼일성

I. 본질안의 삼일 하나님

본질 안의 삼일 하나님의 대한 자료는1장 파트12장 파트4참조.

Back

II. 경륜안에서의 삼일 하나님

A. 아버지의 선택과 미리 예정하심-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에베소서1장
3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절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절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신성한 삼일성의 분배하심을 위하여 아버지는 먼저 우리를 선택하셨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 뿐 아니라 창세 전에 선택 받았다.(4절) 영원 안에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다. 그 다음 그분은 우리를 예정하셨고, 우리에 대한 운명을 결정하셨다(5절). 그분은 이러한 운명을 미리 결정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예정하심이라고 부른다. 그분의 선택하심 뒤에,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의 명분에 이르도록 예정하셨다.(5절) 이것은 우리가 그분의 아들들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들의 명분은 생명을 분배하는 문제이다. 어떤 아버지가 많은 아들들을 가지고 있다면, 이 뜻은 그가 많은 생명을 분배했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한 사람 아담을 인류의 조상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들은 수십억에 달한다. 이것이 생명-분배하심의 결과이다. 사람들로서 우리는 생명-분배하심에 의해 여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지체들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분배하심으로 여기에 있다.

어떤 이들은 아마 “생명-분배하심(life-dispensing)”이라는 용어가 성경에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말은 정확하다. 삼일성이란 단어 또한 성경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삼일성에 관한 사실이 있다.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 우리는 용어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삼일성이란 단어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삼일 신격을 가리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이 우리를 창세 전에 아들의 명분에 이르도록 예정하신 것을 볼 때, 우리는 아들의 명분에 대한 합당한 정의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아들의 명분이 생명-분배하심을 포함한다는 것을 보아왔다. 우리는 생명에 있어서 풍성하신 위대한 아버지를 소유하고 있다. 그분의 능력은 우주적으로 크며, 그분은 분배해야할 많은 양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아무도 그분이 몇 백만의 아들들을 낳으셨는지 말할 수 없다. 이런 모든 낳으심에서 그분은 그분의 생명을 아들들 안으로 분배하셨다. 우리에게는 많은 생명을 분배하신 위대한 아버지가 있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49-150)

이제 여러분은 왜 내가 에베소서 1장이 신성한 분배하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에베소서 1장은 아들의 명분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분배하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아들의 명분은 커다란 문제이다. 우리의 운명은 아들의 명분이다. 우리가 아들의 명분에 이르도록 예정됨을 인하여 주님을 찬양한다! 아들의 명분에 이르도록 예정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며 그분의 뜻의 선한 기뻐하심에 따른 것이다.(5절)

아들의 명분은 “그분의 은혜의 영광의 찬미”를 가져온다(6절). 하나님의 은혜는 영광을 가지고 있으며 영광은 표현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전기가 감춰있을 때 빛이 없다. 전기가 빛날 때 빛이 표현이 된다. 이 빛 비춤은 전기의 영광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는 영광이 있고, 이 영광은 아들의 명분이다. 여러분은 지구 전체가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과 더불어 신성한 아들의 명분으로 충만하다는 것을 깨닫는가?

최근에 나는 지도 두 장을 사서 나의 거실에 두고, 교회가 있는 각 장소마다 핀을 꽂았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모습인가! 무엇이 교회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의 전체, 총체이다. 이것이 아들의 명분이고, 아들의 명분은 영광이다. 그러므로 아들의 명분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아들의 명분의 영광이다.

한때 우리 모두는 죄인들이었으며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생명-분배하심을 통해 모두 함께 모였다. 우리의 아버지께서 우리를 낳으셨으며 그분의 생명을 우리 모두 안으로 분배하셨다. 이제 우리 모두는 우리의 한 아버지에 의해 우리 안으로 분배된 신성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분배된 신성한 생명이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요소이다. 우리 모두는 아들의 명분 안에 있으며 이것이 그분의 은혜의 영광이다. 이것은 아버지의 분배하심이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50)

Back

B.아들의 구속-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성취

에베소서 1장
7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8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절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절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버지의 선택과 예정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아들의 구속에 이르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목적의 성취를 위한 것이다. 전통적인 신학에 따르면, 아버지는 아버지고, 아들은 아들이고, 그 영은 그 영으로서 분명하게 분리된 세 인격들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들이 왔을 때, 아버지는 하늘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한복음을 주의깊게 읽음으로서, 우리는 아들이 왔을 때 아버지와 함께 오셨다는 것을 본다.(요8:29, 16:32). 아들은 그분 자신의 이름으로 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고(요5:43), 이사야 9장 6절에서는 심지어는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불리웠다. 아들은 아버지의 일을 했고(요5:17, 19), 아버지의 뜻을 행했고(요5:30;6:38), 아버지의 말씀을 말했고(요3:34a; 14:24; 7:16-17; 12:49-50), 아버지의 영광을 구했고(요7:18), 아버지를 표현했다(요14:7-9).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아들에게 속하지 않고 모든 것이 아버지께 속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것이 아들이 오셨을 때 아버지가 오셨다는 의미이다.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이다(요10:30; 17:22). 아들은 아버지 안에 계셨으며,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셨다(요14:10-11; 17:21). 아들이 말씀하셨을 때, 아버지께서 역사하셨다. 아들은 그분의 피를 통해서와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을 따라 구속을 성취하셨다(엡1:7-9上).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성취를 위한 아들의 구속은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며 만물을 그리스도의 머리되심 아래 있게” 하려는 것이다(엡1:9下-10원문참조). 만유가 아들의 머리되심 아래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우리는 아마 사람의 몸을 예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우리의 발, 다리, 손을 포함하여 모든 지체들은 머리됨 아래 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죽으면, 지체들은 다 분리될 것이다. 이것은 머리되심(heading up)이 생명의 연합함(uniting)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 몸의 생명은 모든 지체들이 머리 됨 아래 있게 되는 수단이다. 우리 생명이 사라질 때, 더 이상 머리됨은 없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51)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신 후, 아담을 생명나무 앞에 놓으셨다. 하지만 아담은 다른 나무, 사망의 나무에 참여했다(창3:6). 그 때 사망이 사람 속으로 들어왔다. 사람은 모든 피조물의 대표였기 때문에, 그의 사망은 모든 피조물로 머리되심을 잃어버리게 하고 흩어지게 했다.

아들의 구속을 통해 신성한 생명이 그분의 믿는이들 안으로 분배되어왔다. 그들 안으로 분배되는 이 생명은 그들 모두를 합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연합하는 생명을 가진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이들의 머리가 되신다. 이러한 머리되심이 교회생활이다. 그러나 많은 믿는이들이 여전히 옛 창조 안에 살고 있으므로 그들은 멀어지게 된다. 그들은 하나됨도 없고, 연합함도 없는데 이것은 그들에게 머리 삼는 것이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반드시 어떻게 신성한 생명으로 사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이 신성한 생명으로 사는 한, 우리는 연합하게 된다. 이 연합하는 생명은 그리스도에 의해 사용되어 한 교회생활 안으로 통일한다. 교회의 이러한 머리되심 아래 있음은 새 하늘과 새 땅의 때까지 퍼질 것이다. 그 때에는 새 예루살렘이 있게 될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머리되심의 중심이 될 것이다. 그럴때 때가 찬 경륜(dispensation)이 임하는 것이다. 여기서 경륜(dispensation)의 의미는 배열 혹은 경영을 뜻한다. 영원 안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통해 통일될 것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머리되심 아래 있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신성한 생명의 분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주의 회복 안에서 우리의 부담은 단지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생명을 분배하는 것이다. 이 생명-분배하심을 통해, 지구상의 여러 나라로부터 온 성도들이 하나가 된다. 무엇이 이 하나됨을 가져왔는가? 그것은 생명-분배하심이다. 생명-분배하심은 우리를 머리되심 아래 있게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결과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우리 죄를 제거하여 사망이 삼켜버린 바 되게 하고 모든 지체들로 생명-분배하심을 통해 머리되심 아래 있게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역시 기업이 되었다(엡1:11). 더욱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성취를 위한 아들의 구속은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다(12절). 6절에 아버지의 분배하심 후에, 바울은 말하기를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들의 분배하심 후에, 바울은 “그분의 영광을 찬미한다”라고 했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51-152)

Back

C. 그 영의 인치심과 보증-하나님의 성취된 목적의 적용

에베소서 1장
13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영의 분배하심은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여 그분의 영광의 찬미에 이르도록 하시는” 그분의 인치심이다(13-14절). 성령의 인치심은 살아 있는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성숙하여 결국 우리의 몸 안에서까지도 완전히 구속될 때까지 우리 안으로 역사하여 하나님의 요소로 우리를 침투하고 변화시킨다.

하나님은 그 영으로 우리를 인치신다. 우리는 이러한 인치심을 고무 도장과 백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백지에 도장을 찍음으로, 우리는 잉크를 종이 위에 분배한다. 우리가 반복해서 종이에 도장을 찍는다면, 결국 종이는 잉크로 적셔지고 스며들게 될 것이다.

아들의 명분이 생명-분배하심의 문제일 뿐 아니라, 그 영의 인치심 또한 생명-분배하심을 포함한다. 날마다 그 영은 우리를 인치고 계신다. 여러분이 죄인이었을 때, 여러분은 깨끗하지 않은 종이와 같았다. 하지만 어느날 여러분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주님의 이름을 불렀다. 그분의 피가 여러분을 씻었고, 정결케 하였으며, 여러분을 정결한 백지와 같이 만들었다. 그때 그 영은 여러분에게 인치셨다.

우리는 그 영이 누구이며 누가 우리를 인쳤는지 알 필요가 있다. 아들이 오셨을 때, 그분은 아버지와 함께 오셨고, 그 영이 오셨을 때, 그분은 아들과 아버지와 함께 오셨다. 그러므로 그 영은 삼일 하나님의 최종 완결이다. 그 영은 사실상 우리에게 아들과 아버지의 적용이다. 고무도장은 종이에 잉크를 적용시키는 것이다. 종이에 도장을 찍을 때, 잉크는 종이 위에 더해진다. 그 영은 우리에게 삼일 하나님의 완결이고 도달이다. 그분이 우리를 인치실 때, 완전한 삼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달한다. 그 영은 단지 우리에게 도달하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접붙여지신다(고후1:21). 그러한 도달하심은 그분의 접붙이심이며, 그 접붙이심은 또한 그분의 분배하심이다. 삼일 하나님이 우리 안으로 분배되어졌다. 그분이 우리에게 도달되셨으며 우리에게 접붙여지셨다. 삼일 하나님의 신성한 인치심, 생명-분배하심은 항상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53)

그 영의 인치심은 그의 얻으신 것을 구속에 이르게 한다(1:13上, 14下). 어떤 번역본은 “때까지(until)”라고 하지만, “~에 이르도록(unto)"은 그것의 결과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그의 소유로 얻어진 바 되었다. 그분이 우리를 얻으신 그날부터 그분은 삼일 하나님으로 우리를 적시기 위하여 인치심을 시작하셨다. 우리가 하나의 표로서 우리 위에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객관적이다. 우리는 인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온 존재를 하나님의 요소로 적시기 위한 인치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몸은 아직 구속받지 못했다. 따라서 아직도 그 부분은 천연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 안에 성령의 인치심, 적시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 인치심은 우리의 몸이 완전히 적셔지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 몸의 구속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얻으신 바 된 자들의 구속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얻으신 바 된 자들로서 여전히 인치심 아래 있다.

그 영은 또한 우리의 영원한 기업(14上)이신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맛봄을 보장하는 우리의 신성한 유업의 보증, 미리 맛봄이다. “보증(pledge)"이라는 단어는 매우 의미 깊다. 그것은 계약, 담보, 보장, 그리고 미리 맛봄을 의미한다. 고대의 관습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한 부분의 땅을 샀을 때, 판매자는 그에게 보증을 위한 견본으로서 그에게 한 봉지의 땅을 주곤 했다. 그 흙은 구매자가 동일한 토양의 땅을 얻게 될 것이라는 보장이었다. 이것은 인치시는 영이 우리를 인치신 후에도 우리가 우리의 기업이신 하나님을 미리 맛보도록 우리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는 예이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53-154)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을 때, 두 가지 일들이 일어난다. 첫째, 우리는 그분의 인을 가진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소유로 그분께 속한다는 표시로서 그 영으로 우리를 인치셨다.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의 소유가 되셨다. 그분은 우리의 분깃과 누림이 되셨다. 인치시는 영은 우리가 그분의 소유라는 표시이고 또한 우리의 유업인 바로 그 하나님에 대한 보증, 미리 맛봄이다. 이러한 미리 맛봄은 언젠가 우리가 완전한 맛봄을 누릴 것이라는 보장, 담보이다.

인치심과 보증 둘 다 생명-분배하심이다. 매일 그 영은 우리를 인치고 계시며 그분 자신을 우리의 미리 맛봄으로 우리 안으로 보증하고 계신다. 이러한 보증하심을 미리 맛본다는 것은 완전한 맛봄을 보장하는 것이다. 삼일 하나님은 우리를 인치고 계시며 그분 자신을 우리 존재 안으로 보증하신다. 이것이 그 영의 분배하심이다.

14절 끝에 우리는 다시 한번 “그분의 영광을 찬미하다”는 표현을 갖는다. 이러한 표현은 세 번 사용된다. 첫째, 6절에서 아버지의 분배하심에 대하여, 둘째, 12절에서 아들의 분배하심에 대하여, 셋째, 14절에서 그 영의 분배하심에 대하여 이다.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에 대한 이러한 세 번의 언급은 삼일 하나님의 삼중 분배하심을 의미한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54-155)

Back

III. 하나님의 경륜은 그분의 본질을(생명과 존재) 우리 안으로 분배함이다.

요한복음 5장
30절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한복음 7장
29절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

요한복음 16장
27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근원이시자 창시자이신 아버지

아버지는 바로 그 근원이며 창시자이시다. 왜냐하면 아들이 그분에게로부터 나왔기때문이다(요7:29, 16:27下). 요한복음 16장 27절에서 주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 믿은 고로”. 이것은 단지 내가 그로부터(from) 왔다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나왔다고(out from) 한다(원문참조). 아들은 근원으로부터 나왔고, 근원은 아버지다. 그래서 아버지는 근원이고, 그는 창시자이다. 그분은 심지어는 시작, 시초이다. 온 우주는 신성한 인격인 이 시작 안에서 시작되었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07-108)

요한복음 1장
18절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골로새서 1장
15절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히브리서 1장
3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1광체시요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1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는 태양의 빛의 비춤이나 빛남과 같다. 아들은 아버지의 영광의 비춤과 빛남이시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하나님 본체의 형상을 표현하는 것은 인을 치는 것과 같다. 아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어떠하심의 표현이다. 이는 하나님의 본체와 관련된다.
(위트니스 리, 각주, 영문판 p.1100)
표현으로서의 아들은 성취자이다.

아버지는 근원이시고, 아들은 표현, 성취자이다(요1:18, 히1:3). 근원과 표현은 둘이 아니라 두 방면을 가진 하나이다. 근원의 방면이 있고 표현의 방면이 있는 것이다. 근원으로서 아버지는 창시자이다. 그분은 계획을 포함한 모든 것을 시작하셨다. 표현이신 아들은 성취자이시다. 아버지가 계획하신 것은 무엇이든 아들이 성취했다. 그래서 아들은 성취자이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16-117)

요한복음 14장
17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한복음 20장
22절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안에 들어와 적용하시는 분

아버지는 근원이요 창시자이며, 아들은 표현이요 성취자이며, 그 영은 안에 들어와 적용하시는 분이다(요14:17). 아버지는 아들을 보내셨으며(요8:29),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오셨다(요16:32). 아들은 그 영을 보내셨고(요16:7). 그 영은 아들의 이름으로(요14:26) 아버지로부터 함께 왔다(요16:7). 그 영은 아들의 이름으로(요14:26) 아버지로부터 함께 왔다(요15:26). 이로써 여러분은 아버지 홀로 우리에게 이르실 수 없으며, 아들 홀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실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버지는 가까이 갈 수 없는 분이지만(딤전6:16), 아들은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러 오셨다(요1:14). 그러나 그분은 혈육을 갖고 계셨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 안으로 들어오실 수 없었다. 육신의 몸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분은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계실 수는 있었지만, 그들 안에 계실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분은 제자들에게 그분이 죽고 부활하신 것을 말씀하셨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그분은 육신의 형태에서 영의 형태로 바뀌셨다. 그분은 제자들 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는 영이신 그리스도가 되셨다(요20:20). 이것이 삼일 하나님의 도달하심이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28)

삼일 하나님이 그분의 구속된 백성들에게 도달될 때, 그분은 그 영이시다. 예를 들어 전기에는 발전소와 여러분 집의 설비 둘 다가 있다. 발전소만을 갖는다는 것은 실질적이지 않다. 전력이 여러분의 집에 설비되어 있을 때만이 그 전기는 여러분의 날마다의 생활 속에서 실질적이게 된다. 여러분은 하나의 건물이며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근원이며 발전소이다. 삼일 하나님의 도달하심인 그 영은 여러분의 존재 안에 설치되어졌다. 그 영이 여러분의 존재 안으로 들어오실 때, 그분은 아버지와 아들을 멀리 하늘에 남겨 두시지 않는다. 그것은 잘못된 개념이다. 그 영이 여러분 안으로 올 때 그분은 아들과 아버지 둘 다와 함께 오신다. 여러분이 그 영을 갖는다면 또한 아버지를 갖는다. 여러분은 셋 모두를 갖는다. 아버지 안에서 여러분은 사랑을 맛보며, 아들 안에서 여러분은 은혜를 누리며, 그 영 안에서 여러분은 신성한 생명의 교제, 교통, 흐름에 참여한다. 사랑은 근원이며, 은혜는 누림이고, 그 영은 교제(communion)이다(고후13:13). 이것이 삼일 하나님의 분배하심이다.

내가 젊었을 때, 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한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둘째, 여러분은 주 예수를 사랑해야 한다. 셋째, 여러분은 자신이 선하게 되도록 향상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즉 선한 남편, 선한 아내, 선한 자녀, 선한 아버지, 선한 어머니, 선한 이웃, 선한 학생 등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지금 나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인이란 아버지, 아들, 영의 생명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 그는 선한 행위의 생명을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삼일 하나님의 생명을 사는 사람이다. 오늘날 여러분 안으로의 삼일 하나님의 도달하심이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는 영이다(고전 15:45上). 그 분은 그 영이시다(고후 3:17). 그 영이 올 때 그분은 아들의 이름으로 오시며, 아들과 아버지와 함께 오신다. 여러분이 아들을 소유하고 있을 때, 아버지를 소유한다.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명, 여러분의 생명 공급, 여러분의 만유가 되시는 분으로 여러분 안에 살고 계시는 셋 모두를 갖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분은 선한 행동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것을 잊어버리라! 여러분은 철저하고 절대적으로 여러분 안의 삼일 하나님을 관심해야 한다. 그분은 너무나 실제적이시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28-129)

여러분은 “주 예수여”를 부를 때, 위로, 빛, 행복, 평강, 위안 등 매우 많은 즐거운 느낌들에 대한 깊은 지각을 갖지 않는가? 여러분이 아브라함 링컨이나 조지 워싱턴을 부른다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분이 “주 예수여!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때, 여러분은 그분을 사랑하게 되며 그분 또한 여러분을 사랑하며, 그분이 여러분 안에 살고 계신다는 깊은 지각을 갖는다. 이것은 미신이 아닌 사실이다. 그 영은 삼일 하나님의 실제이다. 이렇게 도달하신 영이 여러분 안에 있을 때, 완전한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이러한 실제의 생명, 삼일 하나님의 생명 곧 아버지, 아들, 영을 사는 사람이다. 삼일 하나님의 생명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삼일 하나님과 하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이 움직이실 때 여러분은 움직인다. 그분이 말씀하실 때, 여러분은 말한다. 그분이 머무실 때, 여러분은 머무른다. 그것은 윤리의 문제가 아니며, 죄나 세상을 이기려고 노력하는 문제도 아니다. 여러분은 단지 그분을 관심할 필요가 있다. 여러분이 그러한 생명을 산다면, 세상은 심판 받을 것이며 마귀는 도망갈 것이고, 모든 죄에 속한 것들이 정복될 것이다. 삼일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명, 여러분의 생활, 여러분의 승리, 여러분의 거룩함, 여러분의 의로움, 여러분의 사랑, 여러분의 빛이 된다. 이것이 사람의 윤리보다 더 높은 신성한 윤리를 가지고 있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다. 여러분은 삼일 하나님의 생명을 살 필요가 있다. 그 영은 안에 들어와 삼일 하나님의 생명을 적용시키시는 분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근원과 표현이실 뿐 아니라 안에 들어온 분이시다. 그분이 우리 존재 안으로 들어오셨다.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129-130)

시작도 없는 영원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은 그분의 갈망을 따라 계획하셨다. 시간 안에서 아들 하나님은 그것을 성취하셨다. 그분은 먼저 창조를 이루셨다. 창조 후에, 사람은 타락하고, 타락한 사람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다. 소극적인 면에서, 그분은 사람들을 구속하려 죽으셨고, 적극적인 면에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여 생명을 해방해 아버지 하나님을 위한 많은 아들들을 산출해서 아버지 하나님을 위한 계획을 성취했다. 그의 죽음과 부활후에 그분은 영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의 영 안으로 들어오셔 우리를 완전한 삼일 하나님 안으로 이끌어 우리와 연결할 뿐 아니라 우리를 하나로 연합시키신다. 이 점에서 하나님은 매우 비밀스럽고 매우 완전하고 충만하다.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사람들에게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이 필요하며, 사람은 그분을 구주, 생명, 모든 것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믿을 때, 우리는 그들을 이 삼일 하나님 안으로 침례 준다. 그래서 아버지, 아들, 그리고 영의 문제가 있다.

(위트니스 리, 삼일 하나님, 영문판 p.14-15)

하나님의 경륜의 단계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알았고, 하나님이 무엇을 공급하시는가를 알았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이 그의 경륜을 통해서 어떻게 공급되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다른말로 하나님이 사람 속에 넣어 주시는 것은 영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이 역사를 어떻게 하시는지를 알아야한다. 하나님은 삼일성에 의해 이 역사를 하신다. 삼일 하나님 즉 아버지 아들 성령이 바로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이다. 과거 수 세기 동안 기독교에는 삼일성에 대한 많은 이론들이 있었다. 그러나 삼일성이 하나님의 경륜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올바로 이해될 수 없다. 왜 그분의 경륜을 이루는 데 하나님의 세 인격들이 필요한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서로 다른 세 하나님이 아니라 세 인격으로 나타난 한 분의 하나님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세 인격이 있는 목적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계신가? 그 이유는 오직 삼일성을 통해서만이 그분의 영이 우리 안에 공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 후서 13장 13절은 삼일성에 의한 하나님의 경륜의 단계를 보여준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여기에 아들의 은혜가 있고, 아버지의 사랑이 있고,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다. 이들은 무엇인가? 이들은 서로 다른 세 하나님들인가? 사랑과 은혜와 교통은 서로 다른 것들인가? 아니다. 사랑과 은혜와 교통은 세 단계에 있는 한 가지 성분이다. 사랑은 근본이요, 은혜는 사랑의 표현이요, 교통은 은혜 안에서 이 사랑의 전달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도 세 인격 안에 나타난 한 분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근본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표현이요,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사람 안에 전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일성의 세 인격은 하나님의 경륜의 과정 안에서 이어지는 세 단계가 된다. 이러한 세 단계가 없다면 하나님의 성분은 사람 속에 공급될 수 없다. 하나님의 경륜은 아버지로부터, 아들 안에서, 그 영을 통하여 발전된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영문판 p.9-10)

(1)아버지로부터

아버지 하나님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의 근본이다. 그분은 보이지 않고 접근할 수 없는 분이다. 가까이 가지 못할 빛(딤전 6:16)에 거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안에 오실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가? 만일 하나님이 아버지로만 계신다면 그분은 사람 안에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경륜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이 사람에게 실제가 되기 위하여 그분의 아들, 즉 삼일성의 두 번째 인격 안에 자신을 넣으셨다. 아버지의 모든 충만은 아들 안에 거하시며(골1:19, 2:9), 아들로 나타나셨다(요1:18). 모든 것의 무한량한 공급이 되시는 아버지는 아들 안에서 몸을 입고 나타나셨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인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셨다(요1:1).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신 바 되었다(골1:15). 그러므로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요(요10:30), 아들은 아버지라고 불리운다(사9:6).

전에는 사람이 아버지를 접촉할 수 없었다. 그분은 오로지 하나님이었고 그분의 성분은 오로지 하나님에 속한 것이었다. 아버지 안에 하나님과 사람을 잇는 다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자신을 아들 안에 나타내셨고 인성 안에서 성육신 되셨다. 아버지께서는 아들 안에서 자신의 신성을 인성과 연합하기를 기뻐하셨다. 사람이 가까이할 수 없던 아버지가 이제 성육신을 통하여 가까이할 수 있는 분이 되셨다. 이로 말미암아 사람은 아버지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와 교통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 관계를 흰 수건을 푸른색으로 물들이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아버지의 신성은 흰 수건으로 비유될 수 있다. 푸른 염료에 적셔진 손수건은 아들 안에 계신 아버지가 인성 안에서 성육신 되신 것을 나타낸다. 흰색이었던 것이 이제 푸르게 되었다. 푸른색이 손수건에 더해진 것처럼 인성이 신성에 더해진 것이다. 즉 전에는 떨어져 있던 성분들이 하나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람 안에 공급하기 위한 첫 단계는 성육신 되심으로 자신을 사람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영문판 p.10-11)

(2) 아들 안에

하나님을 사람 속으로 인도하는 둘째 단계는 삼일성의 두 번째 인격, 즉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두 번째 단계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이루는 성분은 무엇인가?

이 성분은 그분의 역사를 통해 더해진 것인데 이 놀라운 분 안으로 들어온 일곱 가지 성분이 있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다. 그리스도의 이 첫 번째 성분은 하나님의 거룩한 요소요, 본질이다.

두 번째 성분은 성육신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다. 성육신을 통하여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사람 속으로 모셔왔고 하나님의 신성한 성분과 인성이 연합되게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이 계실 뿐 아니라 사람이 있다.

그분의 신성과 인성에 더해진 세 번째 성분은 인생이다. 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신 사람은 이 땅 위에서 33년 반을 사셨고 매일매일 일어나는 인간의 작고 큰 모든 일을 경험하셨다. 요한 복음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강조할 뿐 아니라 그가 피곤하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우셨음을 말해 준다.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고난은 일상 생활의 일부였으며 그 고난은 여러 가지 땅에 속한 고통들과, 문제들과, 시험들과 핍박이었다.

네 번째 요소는 그분이 겪은 죽음의 체험이다. 그분은 죽음으로 내려가셨다. 그러나 그분은 죽음 안으로 들어가셨을 뿐 아니라 죽음을 통과하셨다. 이것은 매우 효능 있는 죽음이다. 아담의 죽음은 끔찍한, 멸망시키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은 위대하고 효능있는 것이다. 아담의 죽음은 우리로 사망의 종이 되게 했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사망에서 해방시켰다. 아담의 타락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악한 성분을 가져 왔지만 그리스도의 효능 있는 죽음은 우리 안에서 아담에 속한 모든 요소를 처리하는 죽이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한 성품과, 사람의 성품과, 고난의 인생과, 또한 죽음의 효능이 있고, 이에 더해 세 가지 요소가 있다. 그 다섯 번째 요소가 그분의 부활이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 사람에 속한 것을 다 벗어버리고 다시 하나님이 되신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여전히 사람이다! 그리스도는 사람으로서 그분의 인성에 부활의 생명의 성분을 더한 것이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영문판.p 11-1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섯 번째 요소는 그분의 승천이다. 그리스도는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대적들과 정사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들과 권세들을 초월하셨다. 모든 것이 그의 발 아래에 있다. 그러므로 그와 연합할 때 그의 승천의 초월하는 능력이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섯 번째 요소는 그분의 승천이다. 그리스도는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대적들과 정사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들과 권세들을 초월하셨다. 모든 것이 그의 발 아래에 있다. 그러므로 그와 연합할 때 그의 승천의 초월하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그분 안에 있는 일곱 가지 놀라운 요소들을 기억해야 한다. 신성과, 인성과, 고난의 인생과, 죽음의 효능과, 부활의 능력과, 승천의 초월하는 능력과, 보좌에 앉으심이다. 이 모든 요소들이 놀라운 한 분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어 있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영문판 p.13)

(3) 영을 통하여

그러나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서 우리 속으로 들어오실 수는 없다. 경륜의 첫 단계에 따라 아버지는 자신을 아들 안에 넣으셨고, 아들을 자신 속에 일곱 가지 요소들을 지니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 속에 들어오시기 위해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단계, 즉 마지막 세 번째 단계가 필요하다. 처음 단계는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몸을 이루신 것이고 둘째 단계는 아들이 인성 안에서 성육신 되심으로 일곱 가지의 놀라운 성분을 포함하신 것이다. 셋째 단계는 아버지와 아들이 이제 그 영 안에 계신 것이다. 아버지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아들 안에 있고, 아버지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요소들을 포함한 아들은 그 영 안에 계신다.

주님이 승천하신 후 성령은 이제 구약 시대에 있던 하나님의 영과는 다르다. 구약에 있는 하나님의 영에는 단 한 가지 요소, 즉 하나님의 신성만이 있다. 하나님의 영만으로는 인성과, 인생과, 죽음의 효능과, 부활과, 승천과, 보좌에 앉으심의 요소가 없다. 그러나 오늘날 신약의 경륜에는 그리스도의 일곱 가지 성분들이 영 안에 있고, 만유를 포함한 그러한 영이 우리 속으로 오셨고, 우리 위에 오셨다. 바꿔 말해서 그분은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는 그분 안에 있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이 실제로 연합하는 것이고 우리는 언제나 이것을 누릴 수 있다. 우리는 안팎으로 성령과 연합된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영문판 p.13-14)

성령이란 무엇인가?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요15:26). 그러면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라는 헬라어 의미는 실제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실제의 영, 즉 그리스도의 완전한 실제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몸으로 나타나신 것처럼 그리스도는 성령의 놀라운 인격 안에서 실제가 되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떨어진 분이 아니고 성령은 그리스도와 떨어진 분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나타난 하나님이요, 그 영은 실제가 되신 그리스도이다.

“이제 주는 영이시니”(고후3:17, 원문참조). 이 말씀은 성령이 그리스도와 떨어진 분이 아님을 증명한다. 주는 그리스도 자신이요 또한 그 영이시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 15:45 원문참조). 여기에서도 성경은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가 그 영임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이 생명 주는 영이 성령임을 깨달아야 한다.

나아가서 아버지 하나님도 또한 그 영이시다(요4:24). 그러므로 하나님의 세 인격은 모두 그 영이시다. 만일 아버지 하나님이 그 영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분이 우리 안에 오실 수 있으며 어떻게 우리가 그분을 접촉할 수 있는가? 더욱이 만일 아들 하나님이 그 영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분이 우리 안에 오실 수 있으며, 어떻게 우리가 그 분을 체험할 수 있는가?아버지와 아들이 바로 그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하나님을 접촉할 수 있고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다.

다음 구절들을 주의해 보자. “하나님도 하나이시니...만유 안에 계시도다”(엡4:6).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고후13:5). “그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롬 8:11). 이 세 구절의 말씀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과 그 영이 우리 안에 계심을 계시하여 준다. 그러면 몇 가지 인격이 우리 안에 있는가? 셋인가, 하나인가? 우리는 서로 다른 세 인격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오직 한 인격만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 할 수도 없다. 우리는 다만 하나 안에 계신 세 분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이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시고 일곱 가지의 놀라운 성분을 포함한 아들은 그 영 안에 계신다. 이 놀라운 성령이 우리 속으로 들어오실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공급되는 것이다. 세 인격이 한 영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버지도 있고, 아들도 있고, 성령도 있다. 삼일 하나님이 사람의 영 안에 오시어 우리 안의 영적 생명이 되는 것은 다음에 보기로 하자.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이며 하나님이 우리 속에 공급되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은 한 영 안에 있는 삼일 하나님을 사람의 영 안에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우리의 영 안에 거하시는 삼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에 우리의 모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 길에서 벗어난다면 다른 것들이 아무리 선하고 신령하더라도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를 놓칠 것이다. 오늘 주님은 주님의 자녀들을 회복시켜서 그들로 하나님의 신성한 경륜의 목표로 향하게 하는 역사를 하신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영문판 p.14-15)

Back